[월요포럼]한영우/ ‘역사스페셜’ 중단 안된다

  • 입력 2003년 6월 22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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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교양 한국사를 듣는 학생들은 학기마다 규장각 탐방기를 리포트로 낸다. 강의실에서 백번 듣는 것보다 규장각을 견학하고 오는 것이 교육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리포트를 읽어보면 한결같이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 역사와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게 되고, 식민사관의 오류를 비로소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규장각 전시실에 걸려 있는 ‘대동여지도’ 하나만 보아도 사람들은 입을 딱 벌린다. 중고등학교에서 김정호에 대해 그토록 배웠건만, ‘대동여지도’가 세로 7m나 되는 대형지도라는 것을 실물로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규장각에 걸린 지도도 사실은 원본을 70%로 축소한 것이다.

▼규장각 기록문화 소개등 역할 커 ▼

의궤(儀軌)에 대한 놀라움은 더욱 크다. 국가 행사를 기록하면서 하찮게 보이는 기술자와 노동자의 이름은 물론 근무일수와 품값까지 낱낱이 기록해 놓은 나라가 어디에 있을까. 더욱 의궤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기록문화라는 점에서 세계적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왕조실록의 우수함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의궤는 최근에 알려진 기록문화의 정수(精髓)다.

학생들의 리포트를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기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쉬움을 느낀다. 왜 규장각을 견학한 소수의 사람만이 그런 감동을 받아야 하는가. 중고등학교에서는 왜 그런 교육이 안 되고 있는가. 또, 우리 국민 가운데 규장각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기 때문이다.

그동안 규장각 옆에서 반세기를 살아온 나는 한때 규장각을 직접 관리하기도 했지만, 규장각을 그만둔 뒤에도 복사된 규장각 자료를 들고 다니면서 사회 지도층을 대상으로 특강을 수없이 해오고 있다. 기성세대의 반응은 더욱 충격적이다. 학창시절에 배운 역사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에 탄성을 연발한다. 왜 이런 자료를 이제야 보여주느냐, 왜 이런 강의가 국민교육으로 확대되지 못하느냐고 안타까워하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학생들이나 지도층 인사들의 감동적인 반응을 접할 때마다 이 나라의 역사교육이 참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우선 중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이 바뀔 때마다 국사 과목을 계속적으로 위축시켜 온 것을 보면 교육부 당국자나 교육 전문가들의 역사의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문민정부 때부터 세계화 정책을 표방하면서 국사 과목을 사법고시에서 완전히 빼 버린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는 국사가 필요 없다는 발상도 놀랍거니와 이 나라의 사법관들은 역사 문맹자가 되어도 무방하다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세계화 시대가 될수록 지도층의 역사의식이 투철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정부의 국사교육 정책에 대해 실망과 분노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맙고 다행스럽게 생각한 것이 KBS의 ‘역사스페셜’이다. 인기 있는 사극(史劇)은 역사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유발시키는 효과는 있으나 드라마의 속성상 권력투쟁과 궁중 여인의 방자한 행동 등 부정적 모습을 과장해 보여주기 때문에 정사(正史)의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래서 역사를 왜곡하는 역기능도 만만치 않다.

이에 비해 사계 전문가의 인터뷰와 실증 자료를 최대한 제시하면서 정사를 복원하려고 노력해온 ‘역사스페셜’은 사극의 약점과 역사 교육의 허전함을 메워주는 데 크게 기여했다. 위에서 말한 규장각의 고지도나 의궤 등이 국민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게 만든 것도 바로 이 프로의 덕이었다. 국내외의 주요대학에서 역사교재로 이 프로의 비디오테이프를 사용하는 곳이 적지 않을 만큼 그 수준이 높았다.

▼줄어드는 역사교육 실망과 분노 ▼

그런데 이 프로가 갑자기 중단된다고 한다. 담당 PD들이 제한된 시간과 예산 때문에 고충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럴수록 이를 적극 지원해 시청자들의 기대에 부응할 의무가 있다. KBS가 진정 공영방송이라면 이 프로를 부활시켜 주기를 진심으로 당부한다. 지금 역사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때인가.

한영우 서울대 교수·한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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