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서포터스가 ‘잡일’서포터스로…고학력실업대채 겉돌아

  • 입력 2003년 6월 15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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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조모씨(27·여)는 요즘 서울 서초구 헌릉로 서울특별시립아동병원에서 어린이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조씨는 서울시가 고학력 청년실업자들을 상대로 행정 업무를 보조하도록 도입한 ‘행정 서포터스’로 일하고 있는 것.

그는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중환자실에서 어린이 환자들의 기저귀를 갈고 목욕시키며 밥 먹이는 일 등을 하고 있다.

조씨는 “아픈 어린이들을 돌보면서 보람을 느끼고 새로운 경험도 하게 된다”며 “하지만 학력은 물론 전공과도 아무 관계가 없는 이런 업무를 하는 게 고학력 실업 문제 해결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고학력 실업문제를 단기간에 해소하고 시청 업무를 알린다는 취지로 올해 처음 도입한 ‘행정 서포터스’ 제도가 본래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거나 원칙 없이 실시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불법 주차단속이나 교통 지도, 환경 미화, 수도 검침, 환자 돌보기 등 단순 보조직에 투입되고 있는 데다 사무 보조를 하던 이들 중 일부가 이달 초 불법 주차단속이나 교통 지도 업무로 대거 배치되는 등 원칙 없이 시행되고 있기 때문.

서울시청 인터넷 사이트에 ‘김이영’이란 이름으로 글을 올린 행정 서포터스 요원은 “서울시가 처음에 고급인력 행정 서포터스를 모집한다고 공고해 놓고 갑자기 주차단속으로 업무를 바꾸다니 어이가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전문대 이상 졸업자 3300명을 뽑은 이번 제1기 행정 서포터스는 지난달 19일부터 하루 6시간씩 60일간 일하며 1인당 180만원을 받게 된다. 서울시는 이를 위해 59억여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현재 이들 서포터스 중 800여명은 서울시청과 병원, 동물원 등 시 산하기관에서, 나머지 2500여명은 구청에서 일하고 있다. 특히 구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상당수가 불법 주차단속이나 교통 지도를 하고 있는데 마포 및 송파구청의 경우 각각 92명 중 50여명이 주차단속과 교통 지도 업무에 배치됐고 중구청에서는 60명 전원이 이 업무에 투입됐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처음에는 10명이 채 안되는 인원만 불법 주차단속을 했으나 2일 서울시에서 주차단속 등에 집중 배치하라는 공문을 보내와 40여명을 더 투입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행정 서포터스들은 “힘든 일을 통해 좋은 경험과 지식을 얻을 수 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서울시청 인터넷 사이트에 건축전공자라고 밝힌 서포터스 김종일씨는 “가출청소년을 위한 쉼터에서 일하며 홍보활동을 하고 있는데 전공과는 관련이 없지만 청소년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어 기운이 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처음 공고할 때 ‘주차단속 및 행정보조’라고 밝혔고 주차단속이나 환경 미화 등도 행정 보조에 속하는 일”이라며 “대중교통 이용이 시의 중점사업이어서 인력을 많이 배치한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하반기에도 이 제도를 운영할 계획이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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