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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5월 21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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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달리 이번 윤리강령은 법적 구속력까지 갖춰 인사 조치는 물론 형사처벌까지 예고되면서 값비싼 일식집과 한정식집, 고깃집은 특히 개점휴업상태를 빚고 있다.
20일 저녁 정부중앙청사 인근 H한정식집. 저녁식사로 1인당 6만원짜리 한정식을 파는 이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주인은 “저녁에 보통 3, 4개 방에 손님이 들었는데 어제와 오늘 모두 예약이 없다”며 “50년 넘게 장사하지만 요즘처럼 손님이 끊긴 적은 없었다”며 울상을 지었다.
인근 한정식집 M식당의 주인도 “전화예약을 할 때 3만원 이상 메뉴를 이야기하면 ‘좀 낮춰 팔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며 “강남지역에는 6만원보다 훨씬 비싼 메뉴도 잘 팔린다는데 정부청사 부근 식당만 피해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종로 한정식집들은 이에 따라 음식 가짓수를 줄이는 방법으로 3만원 이하짜리 세트메뉴를 만드는 곳도 등장했다.
서울 시청 인근의 K식당 주인은 “평소 시청의 과별 예약이 5건은 됐는데 어제(19일)와 오늘(20일) 한 팀도 없다”며 “당분간 몸을 사리려는 공무원들 때문에 구내식당만 붐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과천의 D일식집 종업원은 “윤리강령 얘기가 나오면서 손님들이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며 “조만간 3만원 이하짜리 메뉴를 개발했다는 안내장을 청사일대에 돌릴 계획”이라고 전했다.
공무원들은 윤리강령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지만 일각에선 ‘자존심이 상한다’는 감정도 숨기지 않는다.
정부과천청사의 한 사무관은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3만원이 넘는 식사를 잘 하지도 않는다”며 “남몰래 접대받는 공무원들을 제대로 잡아내지도 못하면서 마치 모든 공무원들이 그런 것처럼 오해를 받고 있어 사기만 꺾였다”고 꼬집었다.
대인관계와 업무처리에도 공무원들의 고민은 이어지고 있다.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 근무하는 한 공무원은 “결혼식 축의금 봉투에 5만원이 넘는 돈이 들어있었다면 돌려줘야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같은 청사의 한 간부는 “학술단체들과 함께하는 세미나 일정에는 골프행사가 끼는 경우가 많다”며 “이럴 경우 혼자만 산책을 하거나 낮잠을 자라는 이야기냐”고 말했다.
이번 윤리강령이 ‘용두사미’로 끝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공무원과 음식점 주인들은 “곧 풀리겠지”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는 분위기다. 정부과천청사의 한 공무원은 “한 3년만 참으면 되지 않겠어요. 정권 말기 되면 또 풀릴 게 뻔한데…”라고 말했다.
윤리강령은 △직무관련자로부터 3만원을 초과한 금전이나 선물 향응 △직무관련이나 직급에 관계없이 5만원을 초과한 경조금품 △3만원을 초과한 화한이나 화분 △동료 공무원이 주는 전별금이나 촌지 등을 받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허진석기자 jameshuh@donga.com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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