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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5월 1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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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전남 곡성군 옥과면 황산리 들녘. 마을 어귀 논에서 농민들이 트랙터를 이용해 논을 갈고 볍씨를 채운 모판을 설치하느라 바삐 움직이고 있으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40, 50대 장년층은 광주의 건설공사 현장에 일을 나가니 농사철인데도 사람이 없어요. 농사일은 60, 70대 노인들의 몫이지만 5만원을 줘도 인부를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을 이장 오광석(吳光錫·68)씨는 “노인과 부녀자들이 품앗이로 농사를 짓고 있지만 고추 파종 등 밭일은 일손이 없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마을에서 하루 품삯은 남자 5만원, 여자 4만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5000원 정도 올랐다. 퇴비나 비료 살포 등 비교적 힘든 일은 품삯이 7만원까지 올라 ‘농촌 품삯 7만원 시대’에 접어들었다.
6000평의 논농사를 짓는 보정마을 장남기(張南基·64)씨는 “해마다 인건비는 오르지만 생산비조차 건지기가 빠듯해 이런 식으로 농사를 하다보면 자식 교육은커녕 생계유지조차 어려울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에는 석유류와 농자재 값도 올라 농가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1300가구 농민들이 배추 수박 등 각종 시설작물을 재배하고 있는 전남 나주시 산포면의 경우 철재나 비닐, 모종, 비료 값이 해마다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상당수의 농가가 수천만원대의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시설하우스 10동에 하우스작물을 재배하고 있는 최대억(崔大億· 59)씨는 “찜통 같은 하우스에서 20년째 죽어라 일만 하고 있으나 남은 것은 5000만원의 빚밖에 없다”며 “수박 순을 따야 하는데 일당 5만원에도 사람이 없어 밤늦게까지 혼자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경남 창원시 동읍 대산리 가술들녘의 수박, 고추, 화훼 시설하우스 단지에서도 농민들이 똑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1300여평의 하우스에 안개꽃을 심은 최순호(崔淳昊· 68)씨는 “경기가 좋지 않아 소비가 줄어든 때문인지 가격이 예년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며 “수확이 힘들지만 인건비를 건질 수 없어 인부를 쓸 엄두조차 내지 못 하고 아내와 둘이 일을 한다”고 말했다.
창원시 동읍 농협필름 대표 송정애(宋貞愛· 49)씨는 “유가 인상으로 농사용 파이프와 농약 가격은 지난해에 비해 15%가량 올랐다”고 전했다.
경남도는 도내 모내기에 1만2600명, 양파와 마늘 수확에 1만2000명 등 올봄 영농기에만 4만명 가까운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했다.
충남과 경북 등 다른 지방의 농촌도 마찬가지였다. 충남 논산시 성동면 개청리에서 4000여평에 방울토마토를 재배하는 김석원(金石遠· 50)씨는 “부여군 세도면까지 돌며 일손을 구했지만 필요 인력의 절반인 3∼4명을 구하는 데 그쳤다”며 “짓물러 터지는 과일을 내다 버려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마늘 사과 벼 등 6000평의 농사를 짓는 경북 안동시 일직면 평팔2리 오상달(吳相澾·48) 이장은 “갈수록 농사짓기가 어려워 농민들의 의욕이 많이 떨어졌다”며 “군인들의 일손 돕기가 그나마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전남 장성군 삼계면 화산리 농민 이모씨(56)는 “정부는 현재 농협에서 시행 중인 농자재 무상지원을 확대하고 전국적으로 농촌 일손 돕기 창구를 마련하는 등 농가의 부담을 덜어줄 실질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남도연맹 강기갑(姜基甲) 의장은 “지금 농촌에서는 ‘정리를 해야겠다’ ‘떠나야겠다’는 한숨 섞인 소리만 들려온다”며 “아무리 발버둥쳐도 희망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남도연맹 강기갑(姜基甲) 의장은 “정부가 농가부채 대책과 협동조합 개혁 문제 등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라며 “본격적인 모내기가 시작되기 전에 농촌의 고통을 덜어줄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집회 등을 개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곡성=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창원=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논산=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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