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부정환급 국세청간부, 청탁로비-인맥도 ‘거미줄’

  • 입력 2003년 4월 4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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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품과 인맥이 이렇게 거미줄처럼 얽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2월 중순 뇌물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국세청 간부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현찰 1130만원과 고급 양주 200여 병, 상품권 등이 쏟아져나오자 경찰청 특수수사과 직원들은 혀를 내둘렀다.

법인세 2억4000여만원을 부정환급해 준 혐의로 1일 구속된 중부지방국세청 개인납세1과장 유모씨(55)의 집은 신권 지폐로 가득했고 술창고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안방 장롱에서는 신권 지폐가 100장씩 들어 있는 행정봉투 4개가 가죽가방에 보관되어 있었다. 다른 가방에도 100만원씩이 든 행정봉투 2개가 발견됐다. 화장대 서랍을 열자 10만원권 수표 20장이 들어 있는 가죽지갑이 나타났다. 상품권도 무더기로 쏟아졌다. 가방 2개에 보관되어 있던 상품권은 50여장(600만원 상당). 대부분 백화점 상품권이고 양복 티켓, 구두상품권, 맥주 교환권, 심지어 포장김치 교환권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또 옆방에서는 로열살루트, 조니워커(골드) 등 고급양주와 이강주, 산송이 등 국내 술까지 포함해 200여 병이 보관돼 있었다.

유씨의 법인세 부정환급 사건은 세금 문제를 둘러싸고 동원되는 로비와 인맥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흥미를 끌고 있다.

유씨는 2000년 9월 포항세무서장으로 있을 때 관내 모 호텔에 법인세 4억4000만원을 부과했다. 호텔측은 대구지방국세청에 이의신청을 냈으나 기각되자 2001년 4월 국세심판원에 재심을 청구하면서 본격적인 로비에 나섰다.

경찰에 따르면 호텔측이 첫 접촉한 사람은 이 호텔 영업사장의 친구이자 과거 국세청 담당이었던 현 중앙부처 간부. 그를 통해 2001년 5월경 재정경제부 퇴직인사(1급)를 소개받았다. 이 퇴직인사는 이 호텔건을 담당하고 있던 국세심판원의 주심판관(2급)의 과거 재경부 상사. 결국 심판원은 재조사 판정을 지시했고, 포항세무서장이던 유씨는 지난해 1월12일 환급결정을 내렸다. 유씨는 이 과정에서 허위공문서를 작성하고 공용서류를 은닉했으며 수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유씨는 환급결정이 내려진 이틀 뒤 인사 발령이 났다. 경찰은 심판원의 재심 판정 결정과정에서도 금품이 오고갔는지를 수사 중이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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