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 '때'가 있나요?…成大 수석졸업예정 연예인 정재환씨

  • 입력 2003년 2월 6일 17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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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인 성균관대 강의실 복도에 앉아있는 정재환씨. 정씨는 이미 마친 학부 과정 3년을 포함해 10년간은 밀도있게 공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모교인 성균관대 강의실 복도에 앉아있는 정재환씨. 정씨는 이미 마친 학부 과정 3년을 포함해 10년간은 밀도있게 공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공부에는 ‘때’가 있다고 한다. 신체적 사회적 여건이 공부하기에 최적에 이른 청년들이 자주 듣는 덕담이다. 방송인 정재환씨(42)는 배울 ‘때’가 한참 지난 39세에 대학 공부를 시작했다. 올해 연세대 사회계열에 최연소로 합격한 고의천군(16)은 ‘때’를 기다리지 않고 남들보다 3년을 당겨 공부한 경우다. 두 사람은 공부하기 좋은 때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정씨는 “죽을 때까지 하는 게 공부”라고 했고 고군은 “개인차가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정재환씨는 3년 전 자기 추천자 전형으로 성균관대 인문학부에 입학했다.

자기 추천자 전형이란 지원자가 자신의 장점을 홍보하는 원서를 써내면 이를 토대로 대학측이 합격자를 뽑는 전형 방식이다. 당시 941명이 이 방식으로 응시해 정씨와 탤런트 배용준씨(영상학과)를 포함해 60명이 합격했다.

수능성적 없이 자화자찬으로 들어간 대학을 그렁저렁 다녔더라면 뒤늦게 학벌 욕심이 난 연예인을 학교측이 유명세를 보고 뽑아 학위를 주었겠거니 하는 입방아들이 무성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씨는 3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고(장학금은 형편이 어려운 동급생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매 학기 반납했다) 25일 인문학부 전체 수석으로 총장상을 받으며 6학기 만에 조기 졸업한다. 전공은 사학. 학점은 4.5점 만점에 4.32점이다.

“평소에 책 읽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혼자 하는 독서에 한계를 느꼈다.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확실히 알고 넘어가고 싶었다.”

그러려면 공부밖엔 길이 없고 또 공부를 하려면 대학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을 뒤진 끝에 자기 추천자 전형이라는 제도를 찾아냈다.

정씨는 자기 추천서에 20년 가까이 방송 진행자로 활동한 경력을 쓴 뒤 평소 책 읽는 훈련이 돼 있어 대학 공부도 힘들겠지만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우리말에 관심이 있어 책도 냈으며 대학에서는 국어를 깊이 있게 공부하겠다는 학업 계획을 밝혔다.

정씨는 리오 승용차를 타고 경기 일산 신도시의 집과 서울 여의도의 방송국, 명륜동 학교를 오고가며 ‘주경야독(晝耕夜讀)’ 했다.

바쁜 방송 일정 때문에 조카뻘 되는 학생들과 어울려 다닐 틈이 없어 정씨는 그들로부터 공부하는 ‘요령’을 전수받지 못했다. 동기생들이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200∼300쪽짜리 시험용 교재를 몇 쪽씩 분담해 읽고 요약해 공유하는 동안 정씨는 혼자서 새벽까지 책을 붙들고 앉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냈다.

보고서를 쓸 때도 인터넷에서 다운로드해 짜깁기하는 변칙을 몰랐다. 대신 학교나 국회 도서관에서 2시간 넘게 자료를 찾고 필요한 부분을 일일이 복사하는 정석을 고수했다. 보고서는 마감일을 기다리지 않고 틈날 때 미리 써서 가방에 넣고 다녔다. 갑자기 방송 일정이 잡혀 보고서를 쓸 시간이 없을 경우를 대비해서였다. 11월 말까지 내는 졸업 논문도 정씨는 9월 말에 마쳤다.

“방송은 아무리 급한 개인 사정이 있어도 반드시 나가서 해야 하는 일이다. 20년 가까이 방송일을 하면서 성실성이나 책임감이 몸에 배게 됐는데 이것이 공부를 하는 데도 보탬이 됐다.”

공부의 왕도는 뭐니 뭐니 해도 동기 부여다. 정씨가 하는 공부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었다. 고교 2학년인 정씨의 아들은 밤늦게 집에 돌아와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보고서를 쓰고 책을 보는 아버지를 부담스러워 한다. 하지만 정씨도 그 나이에는 노는 것을 더 좋아했고 아들도 때가 되면 마음이 바뀌리라고 생각한다.

외모와 재능으로 먹고 사는 연예인에게 학위가 중요할까.

정씨는 “자기 그릇만큼 일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연예인이란 늘 새로워 보여야 한다. 연예인에게 “당신 허구한 날 연기가 똑같다”는 말처럼 가혹한 비평도 없다. 이 때문에 머리 모양을 바꾸고 옷을 바꿔 입는다. 공부를 하는 것도 새롭게 보이기 위해서다. 내면이 달라졌다면 새로워 보이지 않을 수 없다. 설사 달라진 게 없더라도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소문만으로 사람들은 달리 보아주고 방송국은 새 일감을 믿고 맡긴다.

연예인들에게는 자투리 시간이 많다. 특히 드라마를 찍을 때는 10시간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정씨는 그동안 책을 읽는다. 지난해 텔레비전 드라마 ‘위기의 남자’를 촬영할 때는 ‘체 게바라 평전’ ‘백범 일지’ ‘영어 지배의 구조’ 등을 읽었다. 며칠 전 미장원에서 파마를 하는 동안에는 문고판으로 된 에르네스트 르낭의 ‘민족이란 무엇인가’를 보았다.

정씨는 3월부터 대학원에서 한국 근대사를 공부할 계획이다. 일본 사료를 많이 봐야 한다는 말을 듣고 한달 전부터 오전 7시에 영등포의 일본어 학원에서 일어를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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