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동서남북/외국인근로자 인권을 지킴이

  • 입력 2002년 12월 25일 23시 47분


이철승(李鐵承). 마흔살인 그는 경남 마산의 씨알감리교회 담임 목사다. 하지만 이 목사는 이주(移住)노동자의 ‘인권 지킴이’로 이 지역에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97년 혼자 힘으로 창원에 경남 외국인 노동자 상담소를 열었다. 창원시외버스 터미널 맞은 편의 허름한 건물 3층에는 그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모여들었고 제법 상담소다운 짜임새도 갖춰졌다.

상담소의 든든한 후원자인 차정인(車正仁) 변호사가 이사장을, 선한사마리아인 교회 우삼열(禹三悅) 목사가 상담실장을 맡고있다. 자원봉사를 왔다가 눌러앉은 박진숙(朴進淑) 간사는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6년 전 입국한 인도네시아인 에릭(29)과 파키스탄인 알리(32)는 상담소를 꾸리는 정규 멤버. 에릭은 우리말이 능숙하고 알리는 “뚱뚱해서인지 아직 애인이 없다”고 말하는 풋풋한 총각.

60평 남짓한 상담소와 옆에 딸린 ‘피난처(Shelter)’에는 이방인들로 늘 북새통이다. 임금체불이나 산재사고, 직장내 폭행 등의 호소도 줄을 잇는다. 상담소는 부상을 입은 채 안식처를 찾는 이들을 사랑으로 보듬고 해결책을 찾는다. 올들어 750여건을 상담했고, 5900여명의 ‘길 잃은 양’들이 피난처를 이용했다.

상담소는 악덕업주에 맞서 인권 탄압실태를 낱낱이 조사, 폭로하고 필요할 경우 사법 대응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에겐 구세주와 다름없지만 물의를 일으킨 기업이나 기관 입장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산업 연수생 등을 통칭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인력난 해소를 통해 우리 경제에 기여한 점이 이미 인정됐다. 반면 이들 중 상당수는 미흡한 제도와 배타적 인식, 편견 속에 고통받고 있다.

살림살이가 궁핍했던 시절, 돈벌러 이역만리로 나간 우리 부모 형제들이 겪었던 설움을 잊은 탓일까. 몇몇 인권지킴이 만으로 이주노동자들이 제 몫을 찾기는 여전히 힘겨워 보인다.

성탄절을 맞아 상담소 관계자들은 새해들어 우리 사회 전반의 인권의식이 한단계 더 성숙해져 이주노동자 모두가 ‘인간적인 삶’을 누리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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