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부천시 '옹주들의 묘' 향토유적 지정 시급

  • 입력 2002년 11월 22일 20시 03분


경기 부천시 오정구 작동 까치울초등학교 부근에는 조선시대 임금의 딸인 옹주(翁主)들의 묘가 있다. 공주(公主)가 왕비가 낳은 딸이라면 옹주는 후궁의 딸.

가장 오래된 묘는 성종(成宗·1470∼1494)의 다섯째 딸인 경숙(敬淑) 옹주의 묘(산 57의2).

경숙 옹주는 부천이 고향인 민자방(閔子芳)을 남편으로 맞아 이 가문에 들어가 살다가 죽었다. 묘가 웅장하며 묘비에는 ‘이들이 타계한 지 150여년이 지난 1643년 외손이 썼다’라고 적혀 있다.

민자방의 16대 손(孫)인 경흥씨(72)는 “조선시대 황실에서 동네 일대를 능으로 지정하려 했다는 이야기를 집안 어른에게 들었다”고 말했다.

이 곳에서 200m 떨어진 수주로 주변(산 26의6)에는 영조(英祖·1724∼1776)의 열째 딸 화유(和柔) 옹주가 잠들어 있었으나 91년 부천시가 도로를 만들 때 묘가 헐려 터만 남아 있다.

후손들의 뜻에 따라 국립민속박물관이 발굴 작업을 벌인 결과 옥과 금, 은으로 만든 석류 모양의 비녀 등 36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특히 놋쇠로 만든 등잔은 조선 후기 금속공예 기법의 우수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출토된 유물은 서울 덕수궁 궁중유물전시관에 보관돼 있다.

묘 터 맞은 편에는 영조의 세째 후궁이자 옹주의 친어머니인 귀인(貴人) 조씨가 안장돼 있다. 묘 주변을 거대한 돌이 에워 싸고 있는 등 당시 왕실 묘의 위용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묘를 돌보는 사람이 없어 사실상 방치돼 있는 상태다.

조씨의 묘 인근에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숨을 거둔 신생(新生) 옹주의 묘가 있다.

옹주들의 묘를 다녀간 풍수지리학자들은 “옹주들의 묘가 모두 남향으로 병풍을 두른 듯 아늑해 명당(明堂)으로 손색이 없다”고 한결 같이 평가한다.

88년 발간된 부천시사(市史)에는 ‘까치울이라고 불리는 이 동네는 호암산(虎岩山)이 에워 싸고 있으며 벼리내가 흐르고 있는 등 생기복덕(生氣福德)한 땅’이라고 기록돼 있다.

부천문화원 백수현 사무국장(44)은 “옹주 묘가 이 지역에 몰려 있는 것은 풍수적 요인과 함께 조선시대 부평도호부로 이어지는 길목이라는 지리적 이점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 향토사학자들은 도굴과 훼손을 우려해 옹주들의 묘역을 향토유적으로 지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황금천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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