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50일째 강릉수해 자원봉사 '털보'권혁규씨

  • 입력 2002년 11월 22일 19시 27분


차츰 잊혀지고 있지만 여전히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태풍 ‘루사’의 피해 현장. 이곳에서 묵묵히 자원봉사 하고있는 ‘보통사람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그 중에서도 권혁규(權赫圭·무직·28·울산광역시 중구 반구동)씨는 유독 눈에 띈다. 그는 지난달 8일 수해현장인 강원 강릉시에 내려와 50일 가까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덥수룩하게 자란 수염 때문에 그는 자원봉사자 사이에 ‘털보’란 별명으로 불린다.

현장에서는 토사치우기와 집안정리 벼베기 등을 닥치는대로 맡았다. 지금은 수재민들이 겨울내내 지내야 할 월동 컨테이너에 비닐막 씌우는 일을 하고 있다.

권씨는 1998년 군을 제대하고 조그만 호프집을 운영하다 실패하는 바람에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태풍 ‘루사’로 수해가 터지자 주저없이 복구현장으로 달려왔다. “좌절을 극복하는 현장에 함께 있고 싶었다”는 게 이유다.

권씨의 눈에 비친 수재현장은 여전히 춥고 외롭다. 그는 22일 “지금도 산골짜기에는 들이닥친 토사를 치우지 못한 집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그가 수해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한 골짜기에서 만난 80대 할머니의 눈물 때문이었다.

가족도 없이 개 2마리와 살다 수해로 집이 무너져버린 그 할머니는 자원봉사자들이 찾아가자 울먹이며 손을 부여잡았다. 할머니는 봉사자를 위해 끓여줄 라면도 커피도 없는 빈곤한 상황. 권씨는 이 할머니를 보고난 뒤 ‘끝까지’ 수해복구를 마무리 하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강릉 자원봉사자 숙소에서 먹고 자는 권씨는 그러나 “도와주러 왔지만 도움도 받고있다”고 말했다. 자원봉사가 자신의 인생을 새설계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긍정적 측면을 깨달은 것도 즐거움. ‘퍼니펌’이라는 인터넷 동호인모임이 매주 수해현장을 방문, 봉사활동을 펴는 것이 신기했다. “컴퓨터 공간에서 얼굴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이렇게 뭉치는 것이 대단해 보였다”는 것.

그러나 공무원들에 대해 권씨는 부정적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수해현장에서 만난 공무원이 한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권씨는 “공무원들이 어렵고 괴로운 사람들에게 보다 따듯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지난 9월말 수해가 터지자 강릉지역에는 하루 270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몰렸다. 지금 이 숫자는 하루 20여명으로 줄었다.

강릉〓경인수기자 sunghy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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