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외국인 근로자 "무료진료도 못 받아요"

  • 입력 2002년 10월 22일 17시 28분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66%가 빈혈 근육통 등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회사의 눈치를 보거나 신분노출을 꺼려 제대로 외부 건강검진이나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요일인 20일 경북 경산시청 앞 마당. 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는 중국 베트남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등 외국인 근로자를 위해 무료 건강검진 행사를 벌였다. 그러나 당초 예상과 달리 외국인 근로자들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경산지역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산업연수생 826명, 불법체류자까지 포함하면 25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정작 이날 검진에 나온 근로자는 8%인 200여명에 불과했다. 적십자사 경북지사가 200여개 업체에 검진 참여를 권장하는 공문을 보내고 직원들이 직접 찾아다니며 호소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한 근로자는 “쉬는 일요일에 교회에 가거나 외출하는 것도 회사에서는 싫어해 늘 감시당하는 분위기”라며 목소리를 낮췄다.

이날 60명을 진료한 상주적십자병원 의료진은 66%인 40명에게 즉석에서 처방을 내렸다. 치료가 필요할만큼 건강이 악화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근육통 빈혈 소화불량 변비 등을 겪고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진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장시간 단순작업을 하다보니 이같은 질환이 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루 3교대 근무가 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쉴 수 있는 날은 한 달에 한번 정도. 이날 참석이 적었던 이유도 ‘휴일 근무자’가 많았기 때문. 외출을 통제하는 회사 분위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진량공단 업체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들끼리 모이면 임금 등 근로조건을 비교하면서 회사를 이탈하는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아 외출을 쉽게 허락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올 1월 경산시가 마련했던 설날행사에서도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한 업체마다 참가를 권장했지만 실제 행사장에 나온 사람은 150명에 불과했다. 적십자사 경북지사 관계자는 “업체의 사정도 있겠지만 1년에 한번 하는 건강검진까지 통제하는 분위기는 비인도적 처사”라며 “회사 직원이 인솔해서 참가하는 풍토가 아쉽다”고 말했다.

경산〓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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