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정의 승리' 아들 가해자 누명 4년여 진실찾기소송

  • 입력 2002년 9월 11일 18시 42분


사건 관련 서류들을 들어 보이는 차재숙씨.수원〓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사건 관련 서류들을 들어 보이는 차재숙씨.수원〓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교통사고 가해자로 몰린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한 어머니의 눈물 겨운 노력이 4년 만에 진실을 밝혀내고 민형사 소송에서도 이긴 사실이 11일 뒤늦게 밝혀졌다.

서울지법 민사65단독 최철환(崔哲煥) 판사는 지난달 8일 교통사고 피해자인 이효상(李效相·27)씨와 어머니 차재숙(車載淑·52)씨가 가해자 홍모씨(27) 등 4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홍씨는 1억2400여만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춘천지법 제3형사부도 1월11일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홍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이씨가 운전한 것처럼 꾸민 사실이 인정된다”며 홍씨에 대해 금고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홍씨가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판결은 모두 확정됐다.

▽사건 전말〓이씨는 98년 6월20일 오전 6시40분경 영동고속도로 하행선 둔내 톨게이트 부근에서 사고를 당했다. 이씨는 대학 친구인 홍씨, 김모씨와 함께 정동진에 해돋이 구경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홍씨의 운전 미숙으로 승합차는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던 대형 트럭과 충돌했다. 조수석에 앉았던 이씨는 머리와 얼굴에 중상을 입고 정신을 잃었다. 홍씨도 어깨와 가슴 등을 심하게 다쳤다.

그러나 경찰은 의식이 있던 홍씨와 김씨의 진술에만 의존해 이씨가 사고를 낸 것으로 조서를 작성했고, 검찰은 99년 1월 이씨를 불기소 처분한 뒤 사건을 마무리했다.

▽진실 찾기〓아들의 사고 소식에 차씨는 넋을 잃었다. 외환위기로 실직한 남편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때였다.

정신을 차린 차씨의 눈 앞에 놓인 경찰 수사기록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차씨는 사고 현장에 있었던 견인차 운전사와 119구조대원 등 목격자들을 찾아가 “사고차 운전자는 홍씨”라는 진술을 받아냈다. 또 안전띠나 운전대에 부딪쳤을 때 나타나는 어깨와 가슴 부위 상처가 홍씨에게 나타난 점, 동승한 김씨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는 점을 들어 99년 10월 검찰에 재수사를 요구했다. 같은 해 5월에는 홍씨와 수사 경찰관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냈다.

검찰은 재수사에 들어간지 약 7개월 만인 2000년 4월 사고 운전자는 홍씨라는 결론을 내리고 홍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차씨의 노력이 결실을 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차씨는 그동안 많은 것을 잃었다. 얼굴에 남은 흉터와 함께 기억상실 등 심한 사고 후유증을 앓던 아들은 “세상이 싫다”며 절에 들어갔다. 변변한 일거리도 없이 오로지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뛰어다니느라 빚도 쌓여 갔다. 결국 유일한 재산이던 집마저 경매에 넘어가 차씨는 월세 단칸방에서 혼자 살고 있다.

차씨는 “힘들었지만 여한은 없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차씨의 소송을 대리했던 임영화(林榮和) 변호사는 “진실을 파헤치려는 모정(母情)의 승리”라면서 “진실을 밝혀준 검찰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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