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출하는 기상이변…재앙은 계속된다

  • 입력 2002년 9월 4일 18시 25분



《기상이변이 연례행사처럼 일어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100년 또는 200년 만이라는 폭우 폭설 가뭄이 자주 되풀이되고 있다. 일부 기상학자는 기상이변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90년대 이후 발생한 기상이변은 지구온난화와 열대지역의 해수온도가 높아지는 엘니뇨 현상 등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전 지구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어떤 재앙이 닥칠지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아울러 기상이변이 자주 반복됨에 따라 이에 대한 대비책도 과거와는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실태-원인과 전망▼

▽매년 계속되는 ‘이변’〓‘2000년 폭설, 2001년 극심한 가뭄, 2002년 사상 초유의 폭우와 태풍.’

최근 2, 3년간 세계적으로 기상이변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올 8월 한달 동안에 과거 1년 동안 내릴 비가 한꺼번에 쏟아졌으며 햇빛이 비추는 일조시간이 평년의 절반도 안 되는 등 이상 현상이 속출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8월 1∼31일 대관령과 강릉 지역에 내린 강수량은 각각 1236.4㎜, 1137㎜로 연평균 강수량(1283㎜)에 육박했다. 특히 강릉에는 31일 하루동안 870.5㎜가 쏟아져 1904년 근대적인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고기록을 수립했다.

반면 지난해에는 한반도에 태풍이 한 개도 상륙하지 않았다. 태풍 상륙에 대비해 충주댐 대청댐 등 유역 면적이 넓은 일부 댐의 물을 미리 뺀 한국수자원공사는 저수량 부족으로 곤욕을 치렀다. 또 2001년 3∼5월에는 사상 최악의 가뭄이 찾아왔다. 이 기간 동안 강수량은 지역에 따라 평년의 11.8∼73.6%에 불과했다.

한편 2000년 겨울(12월∼2001년 2월)에는 폭설이 내려 지역마다 적설량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지구온난화와 엘니뇨가 범인〓199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는 원인에 대해 기상학자들은 지구온난화와 엘니뇨 현상을 꼽는다.

산업화 공업화 등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증가, 산림파괴 등으로 지구가 온실처럼 따뜻해지면서 기온이 상승하는 ‘지구온난화’ 현상을 주범으로 꼽는 전문가가 많다.

기상청 박정규 기후예측과장은 “기온상승으로 대기에 유입되는 수증기 양이 늘어나면 이를 소모하기 위해 폭우 태풍 등이 자주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회(IPCC) 보고서에 따르면 20세기, 100년동안 지구의 평균기온은 0.6도 상승했다. 이는 수천만년 전부터 19세기까지 100년에 0.01도 상승해온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큰 상승폭이다. 특히 한반도 기상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몽골과 중국 북부 내륙지역의 기온 상승 폭은 20세기, 100년동안 2∼4도에 달한다.

연세대 대기과학과 김정우 교수는 “한반도의 겨울철 날씨 패턴이던 삼한사온이 없어지고 매년 4∼5월에 찾아오던 황사가 3∼4월로 한달 앞당겨진 것도 이 같은 기온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대기와 해양의 흐름이 합작해 만드는 자연현상인 엘니뇨 또한 기상이변의 중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엘니뇨는 남미 해안에서 중태평양에 이르는 넓은 열대 태평양 지역의 해수면 온도가 평균적인 해수면 온도보다 높아지는 현상이다.

특히 엘니뇨 감시구역인 동태평양 적도지역 페루 연안의 월평균 해수면 온도가 예년에 비해 0.5도 이상 높은 현상이 6개월 이상 지속될 때를 엘니뇨 현상이라고 부른다.

정확한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지만 엘니뇨 현상이 나타날 때마다 페루 등 세계 곳곳에서 홍수 해일 가뭄 등 기상이변이 발생하고 있다.

▽기상이변 고착화〓기상학자들은 지구온난화가 당분간 멈추지 않을 것이며 이로 인해 지구상 곳곳에 극심한 가뭄과 폭설 폭우가 내리는 기상이변도 계속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지역에 따라 건조한 지역은 더욱 건조해지고 상습적인 수해지역은 물난리가 더욱 심해지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될 전망이다.

김 교수는 “최근의 기후변화 흐름을 볼 때 한반도에는 적어도 앞으로 4∼5년간 비정상적인 기후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새로운 기후형태로 고착화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기상이변이 해마다 되풀이되자 기후변화에 걸맞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대 대기과학과 강인식교수는 “단순한 기상예보 중심의 기상행정에서 벗어나 기후변화를 예측하는 데 많은 인력과 장비를 투자해야 한다”면서 “기후가 변하고 있기 때문에 댐건설 치수사업 등 대규모 건설사업을 추진할 때 과거 기후자료가 아닌 미래예측자료를 사용하고 기후영향평가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국민들도 매년 과거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큰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있는 현상에 대한 대비책을 정부에만 떠넘길 것이 아니라 재해보험에 가입하는 등 자체적인 재해방지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덧붙혔다.

이호갑기자 gdt@donga.com

▼세계 기상이변-대응▼

1900년부터 세계적으로 총 28회의 엘니뇨 현상이 나타났다. 이 같은 기상이변이 생길 때마다 세계에는 크고 작은 자연재해가 발생했다.

특히 1997년과 98년에는 극심한 엘니뇨 현상이 나타나 지구촌에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가 났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 기간중 홍수 한파 가뭄 폭염 폭설 해일 등 55건의 기상이변이 일어나 세계적으로 7만8000여명이 사망했다. 이재민은 350만여명, 재산 피해는 55억달러에 이르렀다.

올해 역시 5월부터 약한 엘니뇨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해 8월중 유럽 동남아시아 중국 미국 등지에 극심한 홍수 가뭄 등 기상이변이 나타났다.

특히 체코 오스트리아 독일 루마니아 등 유럽 중부지역에는 100년 만에 폭우가 쏟아져 체코의 수도 프라하와 오스트리아의 음악도시 잘츠부르크가 침수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러시아도 8월 중순 10년 만에 대홍수가 발생해 93명이 숨지고 수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미국은 1732년 이후 최악의 가뭄 때문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캐롤라이나주는 8월 한달 동안 비가 전혀 내리지 않는 등 5년 내리 심각한 가뭄이 발생했다.

중국 역시 8월15일부터 20일까지 태풍이 남부 해안지방을 강타해 900여명이 숨졌고 수만명의 이재민이 생겼다.

이 밖에 베트남, 방글라데시, 태국 등지도 홍수 등 자연 재해로 많은 피해를 보았다.

미국 유럽 등 기상선진국은 1980년부터 기상이변의 주요 원인으로 알려진 엘니뇨 현상 등 세계의 기후변화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특히 미국은 1987년 기후법을 채택해 매년 예산의 일부를 반드시 기후변화에 대한 연구에쓰도록 하고 있다.

유럽 18개국은 공동출자해 유럽중기예보센터(ECHWF) 산하에 해들리 기후센터를 만들었다. 이 센터에는 기상 전문가 100여명이 배치돼 이상기후에 관한 연구를 심층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일본도 2001년 기상청 기후예측과 인력을 30명에서 50여명으로 늘렸으며 초대형 슈퍼 컴퓨터를 도입해 기후변화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이호갑기자 gdt@donga.com

▼국내 수해방지 시스템▼

중앙재해대책본부에 따르면 4일 오전 현재 태풍 ‘루사’로 인한 피해는 인명만 200여명, 재산은 2조원을 넘어섰다.

기상재해 피해가 해마다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92년 315억원 규모에 머물던 기상재해 피해액은 98년 1조5815억원으로 1조원대를 처음으로 돌파했으며 2000년 6454억원으로 잠시 줄었다가 폭우와 가뭄, 폭설 등 기상이변이 나타난 지난해에는 다시 1조2561억원으로 늘었다.

해마다 피해복구비로 쏟아 부은 액수는 이보다 더욱 많다.

삼성 지구환경연구소 정예모(鄭禮模) 연구원은 “공장가동 중단과 교통마비에 따른 손실, 농작물 피해와 농산물 가격 폭등 요인 등을 감안하면 피해 규모는 공식집계의 3∼4배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악순환을 끊으려면 정부가 임시복구와 보상보다는 예방, 즉 ‘치수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 연구원은 “피해액의 10%만이라도 치수방재 프로젝트 등에 과감하게 예방투자를 했더라면 거푸 피해를 보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집중호우 때마다 큰 피해를 보았던 경기 파주시 문산읍은 그간 배수펌프장 신설과 증설, 경보시스템 구축 등을 통해 올해 피해가 전무했다. 반면 경남 합천군이 지난달 집중호우 때 낙동강 제방 2곳이 터져 수몰된 지 20여일 만에 또다시 재난을 당한 것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전문가들은 또 여름철 국지성 집중호우가 최근 수년간 이어지면서 ‘한국적 기상 현상’으로 자리잡은 만큼 이제는 이에 대한 장기 대책이 필요한 때라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현재 전국적으로 재해예방 관련 예산이 연중 얼마나 집행되는지조차 모르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각 자치단체와 부처별로 계획이 세워지고 예산이 집행되는 탓이다. 이러다 보니 재해예방을 총괄 지휘하는 ‘사령부’도 없어 효율적인 재해예방과 예산집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건설기술연구원 김이호(金利鎬) 수환경연구팀장은 “궁극적으로는 기상이변이 지구 온난화 등 환경파괴에 따른 현상인 만큼 환경보호, 이산화탄소배출량 감축 등 에너지 저소비형 사회·경제체제를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영아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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