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부족 현장 실태]“이틀뒤면 벼 재고 바닥날판”

  • 입력 2002년 8월 27일 18시 29분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쌀 도소매점을 운영하는 정창길(鄭昌吉)씨는 평소 하루에 20㎏짜리 100여부대를 팔았다. 그러나 “요즘엔 쌀이 모자라 제대로 팔지 못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충남 홍성군의 한 미곡종합처리장(RPC)으로부터 받는 공급량이 하루 20∼30부대로 줄었기 때문이다.

마포구 망원동에서 쌀 도소매점을 하는 유영만(劉永萬)씨도 “평소 농협 미곡처리장 두 곳과 민간 미곡처리장 두 곳으로부터 쌀을 받아왔는데 충북 음성군지역의 미곡처리장이 8월 초부터 공급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도소매점들이 쌀을 원하는 만큼 공급받지 못하는 이유는 충청 전남지역의 농협 미곡처리장과 민간 미곡처리장의 벼 재고가 바닥을 보이고 있기 때문.

충남지역의 한 농협간부는 “20㎏들이 400포 분량의 벼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틀이 지나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충남 농협미곡종합처리장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충남지역 36개 농협 미곡처리장 간부들이 지난주 협의회를 가진 결과 대부분이 이 달 말이나 다음달 초 재고가 바닥날 것이라는 의견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거래처에 공급량을 평소보다 절반으로 줄였으나 4, 5일 안에 공급을 아예 중단해야 할 처지”라면서 “거래처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기가 겁난다”고 덧붙였다.

전북 농협미곡종합처리장협의회 간부도 “예전에는 농가가 자체 보유한 벼 물량이 적지 않았으나 올해는 이것마저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는 비가 많이 오고 일조량이 부족해 수확시기가 10월10일로 작년보다 10일가량 늦어질 전망”이라면서 “다음달부터 한달 이상 공급을 중단하면 거래처가 모두 떨어져나갈 것”이라고 걱정했다.

대한곡물협회 전남지회 지인주(池仁柱) 사무국장은 “전남지역 미곡처리장의 사정도 충청 전북지역과 비슷하다”면서 “충청 호남지역은 조생종 벼를 거의 재배하지 않기 때문에 10월까지 심각한 공급부족에 시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 사무국장은 “전남의 민간 미곡처리장은 최근 서울 도소매상에 공급하는 쌀 가격을 20㎏당 1500∼2000원씩 올렸고 다음주에는 소비자가격도 따라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미곡처리장 단체들은 농림부에 정부 재고벼를 공매(公賣)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농림부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농림부 당국자는 “비록 조건부이기는 하지만 올해 공매를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공식적으로 밝힌 데다 정부 쌀을 방출하면 올해 햇벼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좀 더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민간 부문의 쌀 부족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정부 재고 쌀을 내다 팔지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한층 뜨거워질 전망이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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