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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7월 12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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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전철 동인천역에서 내려 지하도를 건너 용동 방면으로 나오면 지금도 옛날 풍의 청과물 가게들을 만날 수 있다.
이 곳이 바로 10여년전까지 청과물 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던 ‘채미전 거리’(중구 용동 9번지 앞길 200m 구간). 채미는 참외의 사투리로 인천 토박이들은 지금도 이곳을 채미전 거리로 부른다.
1910년대 중국인과 일본인들이 용동 주변의 송림 숭의 용현동 일대 과수원에서 생산한 복숭아 배 사과 등 각종 과일을 사람 왕래가 많은 이곳에 내다 팔면서 자연스럽게 청과물 가게 50여곳이 생겼다.
특히 여름이면 부천 소사와 멀리 서울 오류동에서 생산된 참외가 이 곳에 모이면서 온통 노란색 물결을 이뤘다. 당시 오류동에서 재배된 ‘오릿골 참외’는 요즘에 생산되는 참외보다도 당도가 높아 큰 인기를 끌었다. 재래종인 청(靑)참외, 속이 노란 감 참외 등 각종 참외가 실려와 거리를 메웠다. 당시 매일 새벽 청과물 경매가 벌어질 때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생산자와 우마차 주인, 지게꾼 등 400∼500여명이 채미전 거리를 가득 메웠다.
강화 김포는 물론 백령도 연평도 대청도 섬 주민들도 이곳을 찾아 과일을 사갔다.
이춘자씨(71·여·전 김포상회 대표)는 “명절 때만 되면 채미전 거리는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고 말했다.
18살때부터 청과물 가게 점원을 했다는 문영만씨(58·성환상회 대표)는 “60년대 채미전 거리에는 경북 영천 상주 등에서 생산된 과일까지 올라왔다”며 “과일을 실은 화차가 동인천역에 도착하면 40∼50대의 우마차가 일렬로 늘어서 청과물 가게로 과일을 실어 나르던 모습이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채미전 거리 인근에는 각종 채소를 경매하던 채소시장(일명 깡시장)도 있었다. 1200여평 부지의 이 시장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 온 배추 무 상추 등 각종 채소의 경매가 이뤄졌다.
채소시장은 97년까지 운영되어 오다가, 남동구 구월동 농축산물시장이 문을 열면서 옮겨갔다. 채소시장 자리에는 2000년 12월부터 동인천공영주차장이 들어서 있다.
채소시장이 주차장으로 바뀌면서 손님들의 발길도 뚝 끊겨 현재 채미전 거리에는 성환상회, 삼산원협공판장, 인천청과도매, 분동상회, 28 과일도소매 등 5곳의 청과물 가게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매출은 하루 평균 30만∼50만원 정도를 올리고 있지만 전성기에 비하면 시원치 않은 것이라고 상인들은 푸념한다.
요즘 채미전 거리의 청과물 가게들은 시류에 맞춰 멜론 키위 바나나 파인애플 등 외국산 과일도 판매하고 있다.
인천시는 99년 7월 시내 주요 도로의 이름을 새롭게 지으면서 이곳의 거리 이름을 ‘참외전 거리’라고 붙였다.
40여년간 청과물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송일천씨(74·분동상회 대표)는 “채소시장이 떠난 뒤 장사가 신통치 않지만 채미전거리와 평생을 함께 해 온 애환과 정을 잊지 못해 상점문을 닫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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