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딸에 작은 위로"…어머니 2년여 법정싸움 배상 받아내

  • 입력 2002년 6월 15일 23시 05분


성추행을 당한 뒤 정신질환까지 앓게 된 어린 딸을 지켜보던 어머니가 성추행범과 법정싸움 끝에 거액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아냈다.

서울 양천구에서 셋방살이를 하던 A씨(50·여)는 99년 6월 딸 B양(당시 6세)의 항문에 상처가 나고 속옷에 피가 묻은 것을 발견했다. 생계 유지에 바쁜 A씨는 처음엔 딸이 놀이터에서 혼자 놀다 다쳤을 것이라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B양은 눈에 띄게 침울해지더니 3개월 뒤에는 변실금 증세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A씨가 딸을 추궁했지만 겁에 질린 B양은 입을 열지 않았다. A씨는 딸을 계속 추궁한 끝에 집주인 C씨(65)가 수 차례 딸을 성추행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법적 대응에 나섰지만 C씨는 고령에 지병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형사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반면 B양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진단을 받고 1년 이상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경찰서와 법정에서 괴로운 기억을 되살려내느라 받은 정신적 고통도 컸다.

A씨는 2000년 C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냈다. 재판 과정에서 C씨는 “딸의 이상증세를 발견하고서도 3개월간 이를 방치한 책임이 있다”며 오히려 A씨를 공격했다. B양의 정신질환은 A씨가 식칼로 협박했기 때문이라는 주장까지 내놨다.’

사건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9부(박국수·朴國洙 부장판사)는 최근 “C씨의 주장은 이유가 없으니 A씨와 B양에게 치료비와 위자료 등을 합쳐 46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고 15일 밝혔다. 딸을 위해 2년여간 눈물로 대항해온 어머니의 ‘위대한 승리’였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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