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는 온통 피바다였지요"

  • 입력 2002년 6월 15일 21시 34분


'꽝, 우지지지지직∼.'

고속버스 승객들은 유조차의 '습격'을 받은 순간 굉음과 함께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차량 지붕이 소름 끼치는 금속음을 내며 찢어지기 시작했고 곧 이어 거대한 쇳덩어리가 마치 고철 압축기처럼 머리 위를 짓눌러 왔다.

▽사고 순간=15일 오후 3시반경 충북 옥천군 동이면 금암리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2차로를 달리던 15t 유조차가 갑자기 1차로로 넘어가다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다.

이어 유조차는 분리대를 부수고 맞은편 하행선 1차로를 달리던 고속버스의 왼쪽을 윗 부분부터 훑어내렸다.

"굉음과 함께 차량 천장이 눌려왔어요. 비명을 지르다 실신했지요.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들렸고 버스는 온통 피바다였지요."

고속버스에 타고 있다 부상한 김용란씨(55·여)의 증언이다.

고속버스는 유조차에 들이받힌 뒤 오른쪽 가드레일을 들이받으며 뒤집혔다. 이어 고속버스를 뒤따르던 택시와 승합차 등 4대가 연쇄 추돌사고를 일으켜 고속도로 상하행선이 5시간 이상 극심한 체증을 빚었다.

▽인명피해=이날 사고로 이영순씨(63·여·서울 은평구 대조동) 등 고속버스 승객 14명이 숨지고 1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부상자와 사망자의 시신은 옥천 성모병원과 대전 중앙병원 등으로 옮겨졌다.

사고를 당한 버스는 이날 오후 1시경 승객 26명을 태우고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을 출발해 부산으로 가던 중이었다.

버스에는 미국인 심스타미 딘(47)이 타고 있었으나 왼쪽 눈 부위에 약간의 상처만 입었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88년 입국해 부산대에서 영어초빙교수 생활을 한 뒤 2000년부터 한국 법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개인 일로 서울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사고 경위 및 경찰 수사=유조차 운전자 이굉씨(61)는 "시속 80㎞ 정도로 달리는데 갑자기 왼쪽 바퀴가 펑크난 듯 갑자기 핸들이 왼쪽으로 돌아가 1차로를 거쳐 중앙분리대를 넘어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사고 지점은 유조차의 진행 방향으로 볼 때 오른쪽으로 꺾어진 커브길이다. 사고 지점 인근인 금강2교부터 옥천터널까지 구간은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고속도로 사고다발 지점이어서 현재 선형 개선 공사가 진행 중이다.

경찰은 사고 지점이 커브길이고 사고 당시 약간의 비가 내려 운전자 이씨가 졸다가 핸들 조작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보고 조사 중이다.

경찰은 또 이씨의 음주 운전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이씨의 혈액을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검사를 의뢰했으나 이씨는 "수십년 무사고 경력에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다"며 음주 사실을 부인했다.

<옥천=지명훈 장기우기자>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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