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는 불안하다③]'목숨'있는곳에 의사가 없다

  • 입력 2002년 5월 19일 18시 11분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는 현재 전공 의사(전공의) 수가 정원 16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7명 ‘비상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몇 년 째 전공의들의 진료과목 지원 때 ‘흉부외과 기피현상’이 지속되고 있고 올해 1년차 지원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때문에 이들 전공의 7명은 ‘출퇴근’이 따로 없다. 때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비상 사태 때문에 중환자실 옆 숙소에 머물면서 ‘5초 대기조’나 다름없는 생활을 한다. 이것은 이 병원 흉부외과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글 싣는 순서▼

- ①병 고치러 갔다 병 걸린다
- ②응급실 시설-인력 태부족

의사들이 목숨을 살리는 진료과목을 외면하고 비교적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과목에만 몰리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이런 추세라면 몇 년 뒤 환자가 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외국에 나가야 하거나 외국 외과 의사를 엄청나게 데려와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심장 수술 전문의는 다른 진료과 의사보다 2배 이상이 많은 100만달러(약 13억원) 수준의 연봉을 받는 것은 물론 ‘생명을 구하는’ 의사로서 사회적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다르다. 지난해말 치른 올해 전공의 전형 결과에 따르면 일반외과와 흉부외과, 응급의학과의 응시율은 각각 82.9%, 42.9%, 62.5%로 ‘미달 사태’를 빚어 각각 40여명의 전공의를 충원하지 못했다. 반면 피부과 성형외과 안과 등의 응시율은 175∼216%로 정원의 2배 가까운 지원자가 몰려들었다. 서울대병원에서는 인턴 과정에서 1, 2, 4, 5등을 차지한 학생이 모두 안과를 지원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의사들의 개원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과목이나 지역에 몰리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한나라당 보건복지위 심재철(沈在哲)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강남구에서 개원한 내과와 외과는 모두 43곳인데 비해 피부과 성형외과는 71곳이었다. 또 지난해 10월 현재 서울 강남구의 개원의 수는 609명으로 인구 1만명 당 11.3명인데 비해 도봉 노원구는 각각 3.4명으로 가장 낮았다.

전문가들은 “어렵고 위험하고 더러운 ‘3D’ 일을 기피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세태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지만 잘못된 보험체계가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으며 의약분업 이후 이 현상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아주대병원 흉부외과 이철주(李哲周) 교수는 “일반외과 흉부외과 등의 의사는 수술에 따른 의료사고와 소송 등에 대한 부담이 크지만 보험수가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환자의 목숨을 살리기 위한 시술도 ‘과잉 진료’라는 이유로 보험적용이 제외되는 사례가 빈발해 의사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것. 이 때문에 피부박피술 미용성형 라식수술 등 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진료과에만 전문의 지원자가 몰리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일부 인기과 내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비뇨기과에서는 방광암 등의 치료보다는 성기확대술, 성형외과에서는 손가락 접합이나 화상치료 등 치료성형보다 유방확대 등 미용성형에 관심을 보이는 전공의가 더 많다는 것.

고려대 구로병원 성형외과 김우경(金雨慶) 교수는 “미용성형으로 개원하는 의사가 많아지면서 전국 대학병원 성형외과는 예외없이 ‘전문의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차지완기자 maruduk@donga.com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

▼'힘든진료 기피'해결은…▼

“바로 지금이 ‘한계’입니다. 환자는 늘고 수술할 수 있는 의사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외과 전공의 육성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장병철(張柄喆·사진) 교수는 외과 내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이른바 ‘메이저 4과’ 전공의 중에서도 생명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분야에 지원한 전공의에게는 보조금 등을 지원해서라도 이탈현상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일반외과나 흉부외과, 진단방사선과 등에 대한 ‘기피현상’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잘못된 의료시스템이 빚어낸 결과인 만큼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고 심할 경우 환자가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빚어질 수도 있다는 것.

특히 장 교수는 “의료보험 수가체계를 개선하지 않으면 국내에서 수술 능력을 갖춘 의사를 양성하기가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며 “수술에 따른 위험도 등을 보험수가에 반영해 외과의사에게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병원 측도 ‘저임금’으로 전공의를 고용해온 관행을 버리고 당직비부터 현실화해야 한다”며 “일주일 중 반나절 정도의 휴가 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병원에서 지내는 전공의와 출퇴근 시간이 일정한 다른 진료과 전공의의 당직비가 같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말했다.

차지완기자 marud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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