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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3월 31일 21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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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창의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는 뚜렷한 공통점들을 갖고 있다. 호기심, 남과 다르게 세상 보기, 열정, 몰입, 도전, 인내 등이 창의성의 원천이라는 것이 그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결론이다.
▽도전하라〓사물놀이 장단을 서양의 공연문화와 결합시킨 ‘난타’. 대사 한마디 없이 장단만으로 세계인을 사로잡은 이 공연은 송승환씨(45)의 아이디어로 태어났다. 송씨는 모든 창조적인 작업은 ‘안주하지 않으려는 도전정신’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85년 잘 나가던 탤런트였던 그는 돌연 방송활동을 중단하고 미국 뉴욕으로 떠났다. 매너리즘에 빠진 자신이 싫었고 문화적 갈증도 작용했다. 대학 2학년 때 ‘내게는 졸업장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등록금으로 여행을 떠난 것처럼 다시 한번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다.
자신은 시계장사를 하고 부인은 손톱미용사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으로 3년간 브로드웨이 연극과 뮤지컬을 실컷 봤다. 이 기간의 문화적 세례가 난타의 자양분이 됐다.
현대그룹 창업자 고 정주영 회장의 한 평생은 ‘도전’ 그 자체다.
84년 서산지구 방조제 공사 때 수십t의 바윗덩어리를 퍼부어도 파도에 휩쓸려 내려가자 322m짜리 고철 유조선을 가라앉혀 거센 물살을 잡은 일화는 유명하다. 프랑스의 문화비평가 기 소르망이 20세기 최대 이벤트라고 극찬한 소떼 방북도 그의 아이디어. 북한측이 판문점을 통한 직접방문이 어렵다고 하자 소떼 방북을 생각해냈다. 오늘날 한국을 먹여 살리는 자동차 건설 조선산업이 모두 그의 도전정신에서 나왔다.
▽미쳐라〓‘짱가’노래를 부르는 전원주를 등장시킨 002 국제전화 외에도 TTL, 도도 화장품, 016 Na 등 파격적인 광고를 연속적으로 히트시킨 박명천 CF감독(31). 그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 일에 미치다보면 아이디어는 자연적으로 나온다”고 말한다.
야근을 밥먹듯이 하고 몇 주동안 집에 들어가지도 못해도 단 한 순간도 힘들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광고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져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모든 사람이 한가지 부분에서는 어마어마한 창의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정해진 코스를 벗어나면 도태될 것 같은 사회 분위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뿐입니다.”
▽새롭게 세상을 봐라〓한국건축의 실험정신 장윤규씨(38). 하늘에 떠있는 피라미드를 형상화한 이집트 대사관은 그의 대표작이다. 그의 핵심 주제는 항상 움직이고 고정돼 있지 않은 ‘자유정신’에 있다. 항상 사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습관에서 창의성이 나온다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가끔 동물의 눈으로 세상을 관찰하기도 한다. 숲 전체를 유리로 둘러싸 숲에서 나오는 산소를 도시에 공급하기, 건물 전체를 영사막으로 사용해 레이저빔을 쏘는 미디어 월 등 새로운 개념들을 만들어낸 그의 창조성은 이런 과정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1조원의 신산업을 만들어낸 만도기계의 김치냉장고 역시 마찬가지. 가전회사도 생각하지 못한 김치냉장고를 자동차용 에어컨 생산업체가 착안해냈다. ‘우리는 자동차 부품회사’라는 고정관념을 뛰어넘지 못했다면 김치냉장고는 탄생하지 못했다.
▽호기심은 창의력의 씨앗〓특허권을 받은 발명품만 110개로 기네스북에 세계 최대발명가로 기록된 한국발명학회 신석균 회장(73). 여섯 살 무렵 비오는 날 앞도 보이고 빗방울이 튀지 않도록 우산 앞쪽에 투명 비닐을 붙인 우산을 만들면서 그는 발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수면 학습기’‘임신조절 컴퓨터’‘위폐 감식기’‘바이오리듬 컴퓨터’ 등 그의 발명품은 4000여개에 이른다.
그는 아이디어의 원천을 ‘호기심’이라고 말한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호기심이 없으면 집중력, 탐구력, 응용력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
탄소나노튜브로 만든 반도체 개념을 제시한 서울대 물리학과 임지순 교수(51) 역시 “어떤 현상을 완전히 알 때까지 묻고 또 묻는 호기심이 창의력의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전문성과 인내심〓일반인들은 창의성은 천재의 머릿속에서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숫자로 된 인터넷 암호 대신 기하학적인 도형 개념을 도입, 암호기술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고기형 교수(48)는 “창의성에 대한 착각은 황무지에서 갑자기 꽃이 피고 숲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고 꾸준히 노력하면 창의적인 발상이 나온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임지순 교수도 “물리학을 몰랐다면 탄소나노튜브를 연구하더라도 다발로 묶어 연구해볼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기본 소양을 갖추고 있어야만 창의적인 생각이 떠오른다”고 강조했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