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지키면 모두가 편해" 국제축구심판-선관위계장

  • 입력 2001년 12월 31일 16시 42분


“희망과 기대보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새해를 맞습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월드컵 주심 후보 물망에 오르고 있는 김영주(金永珠·45) 국제축구심판과 서울시 서초구 선거관리위원회 이영춘(李永春·46) 지도계장. 두 사람에게 2002년 새해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두 사람은 각각 6월 월드컵 대회와 12월 대통령선거 기간에 최일선 현장에서 뛰게 될 주역들. 이들에게는 양대 행사의 성공을 저해하는 숱한 ‘반칙’과의 치열한 일전을 벌이며 ‘페어 플레이’를 이뤄내야 할 막중한 임무가 부여돼 있다.

김씨는 국가대표 축구시합인 A매치 56경기를 포함해 11년 동안 모두 140여회의 국제경기를 주관한 베테랑 국제심판. 이 계장은 두차례 대선과 세차례 총선을 포함해 지금까지 10여 차례의 선거를 치른 선거감시활동 12년 경력의 소유자. 경력으로 보면 단연 두 사람은 페어 플레이에 관한 한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의 ‘보안관’인 셈이다.

두 사람은 새해를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31일 서울시청 앞에서 만나 서로 영역은 다르지만 양대 행사 모두 국가의 명운이 달린 대사(大事)인 만큼 페어 플레이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이번 월드컵부터 프리킥을 얻어내기 위해 상대 선수가 반칙을 한 것처럼 속여 쓰러지는 ‘시뮬레이션 액션’이라는 비신사적 행위를 레드카드로 과감히 응징하기로 했습니다. 꼼수나 속임수로 승자와 패자가 바뀌는 불합리한 결과를 사전에 막겠다는 거지요.”

김 심판이 말문을 열자 이 계장이 곧바로 화답했다.

“축구경기뿐만 아니라 선거판에도 ‘백 태클’이나 ‘시뮬레이션 액션’ 같은 불법운동이 난무합니다. 이런 행위가 축구경기에서는 모두 퇴장으로 연결되지만 선거에서는 경고에 그치는 게 대부분이지요. 정치판에는 레드카드가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두 사람은 현장에서 겪은 어려움을 토로하며 말을 이어갔다.

“유권자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졌다지만 아직도 선거철이면 금품이나 향응을 기대하는 유권자들이 많습니다. 유권자들의 이런 태도가 후보들의 불공정한 경쟁을 부추기기도 합니다.”

이 계장의 지적에 김 심판은 “심판을 보다 보면 종종 선수나 감독들한테서 거친 항의를 받는데 눈앞에서 명백한 반칙을 하고도 항의하거나 아니라고 우길 때는 정말 괴롭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에 이 계장은 “선거운동 단속도 마찬가지죠. 위법 행위를 적발해 시정을 요구하면 수긍하기는커녕 폭언을 하고 심지어 협박하는 후보들도 있어요. 기본적인 규칙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국민의 대표가 되면 정말 큰 문제가 아니겠습니까”라고 맞장구를 쳤다.

서로 열변을 토하던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이 땅에 페어 플레이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며 새롭게 각오를 다졌다.

“관중들이 시원하고 멋진 골을 기대하는 것처럼 페어 플레이를 통해 희망과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은 우리의 바람이자 의무입니다. ‘레드카드’가 없는 월드컵과 선거가 되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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