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유학자 이경무씨 50억대 토지기증 약속

  • 입력 2001년 11월 26일 18시 46분


팔순의 유학자가 자신이 평생 모은 수십억원대의 재산을 모두 사회에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혀 화제다.

고양유림서원 원장 이경무(李慶懋·80·경기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사진)옹은 26일 오후 고양시청을 방문, 황교선시장과 만난 뒤 최근 고양시 일산동 택지지구 내 토지보상금으로 받은 5억원짜리 수표를 고양시에 기탁했다.

이에 앞서 이 옹은 이날 고양시청 기자실을 찾아와 본보 기자를 만난 뒤 시청 인근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들면서 앞으로 고양시와 강원지역 등에 있는 5만여평의 땅(시가 50억원 이상)을 모두 사회를 위해 내놓겠다고 밝혔다. 그는 1시간여에 걸친 인터뷰 내내 단아한 옷매무새(망건과 한복)를 유지하면서 노인답지 않게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거액의 재산을 기부하기로 결심한 동기는….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선행을 행하는 집에는 반드시 경사가 찾아온다는 뜻)만 명심하면 돼. 99칸짜리 집에서 살아도 결국 죽어서는 8자짜리 나무집(관)에서 잠자게 되잖아.”

-자녀나 가족의 반대는 없었나.

“2남2녀를 두었는데 모두 장성해 시집 장가를 가고 직업도 있으니 내 할 일은 다했어. 집사람과 20평짜리 아파트에서 사는데 불편함도 없고….”

(점심식사로 시킨 해장국이 나오자 이 옹은 후루룩 소리를 내며 왕성한 식욕을 보였다)

-무척 건강해 보이는데 특별한 비결은….

“내일 죽는다 해도 오늘 마음을 편하게 가지면 되지. 이 나이에 보약이나 운동이 무슨 효과가 있겠어. 두려움 없이 편하고 따뜻한 마음이 건강의 비결이야.”

-무슨 일을 해 큰돈을 벌게 되었는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한 푼도 없었어. 내 땅 한 평 없이 일하시는 부모가 무척 가슴에 걸려 열심히 일했지. 막노동으로 시작해 건재상을 하면서도 틈틈이 땅을 사 농사지었던 게 나이가 드니 큰 재산이 되더군.”

-유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는.

“가난해서 신학문을 공부하지 못했지만 틈틈이 한학을 혼자 공부했고 나이 들어 성균관 유림대학을 통해 본격적으로 한학을 배웠지. 10년 전부터는 유림서원을 세워 초중고교 선생님 30여명에게 한학을 가르치고 있어.”

-그동안 다른 선행도 하셨을 것 같은데….

“왼손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지 않소.(눈을 감으며) 내가 기자 양반을 만나는 것은 오늘의 일을 스스로 다짐하고 우리 사회와의 약속으로 확증해두기 위한 것일 뿐이지.” -고양시에는 개발 덕에 벼락부자가 많지만 재산을 내놓는 분은 거의 없는데…. “개발 덕에 떼돈 번 사람들 많지만 대개 이웃하고 싸우고, 형제끼리 다투더라니까.(손사래를 치며) 돈도 좋지만 나와 살 맞대고 사는 사람들이 더 중요한 것을 몰라.

<고양〓이동영기자>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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