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 판결 파장]李총재 북풍 연루의혹 일단 불식

  • 입력 2001년 11월 9일 22시 49분


법원이 ‘북풍 사건’에서 검찰측 증인 김모씨가 제시한 증거가 조작됐다고 판단함에 따라 이 사건에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가 연루됐다는 의혹은 일단 불식될 것으로 보인다.

북풍 사건의 최대 쟁점은 한나라당 정재문(鄭在文) 의원이 97년 대선 당시 이 총재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북측 인사와 접촉했느냐는 것이었지만 법원이 증거 부족을 이유로 정 의원의 ‘북풍’ 요청 의혹을 인정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기 때문이다.

▽재판부의 판단〓재판부는 9일 판결문에서 정 의원이 북측에 360만달러를 제공하고 ‘북풍’을 요청했다는 의혹이 있으나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김씨가 법정에 제출한 위임장이 조작됐거나 진정성이 의심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회의록 합의서에 있는 서명에 가필한 흔적 등이 있고 위임장은 검찰측 증인인 김씨의 입수 경위와 문서의 형식 및 내용 등에 비춰볼 때 역시 그 진정성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김씨의 증언 역시 믿을 수 없다고 밝혔다.

김건일(金建鎰) 부장판사는 이날 재판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김씨의 말과 증거는 증언 시점(9월)으로 미뤄볼 때 정치적인 분위기에서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며 “재판을 정치 폭로의 장으로 이용한 듯하다”고 말했다.

▽검찰의 반박〓검찰은 회의록 등에 대해 ‘명백히 조작된 문서’라는 재판부의 판단은 합의서 서명 등에 대한 문서검증도 거치지 않은 만큼 근거가 약하다고 주장했다.

김씨가 북측이 회의록 원본을 자신에게 넘겨줬다고 거짓 주장할 이유가 없고, 다른 서신의 서명과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이유로 서명을 본떴다고 판단한 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재판부가 아들을 만나기 위해 베이징(北京)에 갔다가 우연히 북측 인사를 만났다는 정 의원 주장을 배척하고 회합이 상당한 준비 끝에 이뤄진 점을 인정하고도 근거가 불분명한 문서 조작 등을 이유로 형을 감경한 판결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또 “증인 출석 요청을 받은 김씨가 9월초 회의록 사본을 우편으로 재판부에 보낸 뒤 증인으로 출석해 그 원본을 제출했다”며 고의로 잘못된 증거를 제출해 정치 공방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의혹도 부인했다.

▽정치적 파장과 전망〓검찰은 증거 제출을 둘러싼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으나 재판부의 판단이 정치권에 미칠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측은 지난달 18일 재·보선을 앞두고 국회에서 김씨의 법정 증언을 근거로 “한나라당 이 총재가 대북지원을 북한과 밀약했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민주당측이 제시한 이 총재의 대북 밀약설의 근거가 법원에 의해 부인됨에 따라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역공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검찰이 정치권의 움직임을 염두에 두고 김씨를 증인으로 채택했다는 의혹도 있어 검찰과 여당이 함께 어려운 국면에 처할 수도 있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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