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청년 벤처사업가의 좌절]“내일아침 눈뜨지 않았…”

  • 입력 2001년 11월 5일 18시 57분



A씨(32·서울 강동구 둔촌동)는 매일 아침 가방 안에 보험약관서류를 챙겨 넣을 때마다 절로 쓴웃음이 나온다.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한 지도 벌써 두 달이 다 되었지만 벤처기업 개발이사로 보낸 지난 2년간이 아직도 머리와 가슴 속을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1999년 말 캐나다 S대학 컴퓨터학과를 졸업하고 귀국 준비를 하던 A씨에게 국내의 벤처 열풍 소문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자유롭게 토론하는 기업문화와 꿈을 가진 젊은이들, 그리고 넘치는 투자자와 돈….

귀국 후 지난해 2월 고교 선배였던 B씨(33) 등 5명과 함께 휴대전화와 PDA용 전자부품 및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벤처회사를 설립했다. 자본금은 2억원에 불과했지만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에 사무실을 마련하는 등 겉모습이 완성되자 투자금 3억원이 금방 들어왔다.

하지만 회사가 시제품을 개발하고 막 본격적인 제품 판매와 투자 유치에 나선 지난해 10월이 되자 상황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후 6개월간 국내 벤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개발이사였던 A씨는 없는 돈에 접대까지 해가며 투자자 수십명을 쫓아다니고 사장 B씨는 국내에서 사주지 않는 프로그램을 들고 미국과 일본까지 갔지만 모두 실패였다.

“1년 이상 월급을 안 받고 허리띠를 졸라맸는데 기존 투자자들이 돈을 다시 내달라고 재촉까지 하니, 다음날 아침에 눈뜨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회사는 올 3월 테헤란로 사무실을 팔고 경기 고양시 일산에 있는 사장 B씨의 집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하지만 의욕을 잃은 직원들의 개발성과는 더디기만 했다. 회사는 8월 마침내 문을 닫았고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A씨의 얼굴에는 30대의 패기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많은 주름이 생겨버렸다.

<최호원기자>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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