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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16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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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천연두 예방접종은 1980년에 중단됐다. 이 때문에 전체 인구 중 절반 가량만 예방접종을 해 ‘잔존 면역’을 갖고 있고 나머지는 전혀 면역력이 없는 상태다. 그러나 대량의 균이 살포될 경우 10일 정도의 시간이 경과하면 예방접종자 중에서도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과 예방주사를 맞지 않은 20세 미만에서 많은 환자가 발생할 것이다.
이화여대 의대 강명근(姜命根·예방의학) 교수는 올 5월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보고서 ‘생물무기 또는 원인불명 전염병 발생 대비 전략’에서 천연두의 예를 들어 국내 생물테러 대비책의 ‘현주소’를 이렇게 기술했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천연두 환자를 직접 진료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피부 발진 등의 엉뚱한 진단을 내리고 환자를 개방된 병실에 입원시킨다. 의사가 제대로 진단을 내리더라도 현재의 의료진 대부분이 천연두 면역이 없기 때문에 환자 치료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의 테러 보복전쟁 지지 의사를 천명한데다 주한 미군이 주둔해 있고 2002년 월드컵대회가 예정돼 있어 생물테러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테러가 발생할 경우 속수무책일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이 때문에 생물테러 가상 시나리오를 수립해 범정부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생물테러 시나리오는 △미국처럼 우편물에 의한 세균 전파 △지하철 등 대중 교통시설에서의 테러 △경기장이나 공연장 등에서의 테러 △기타 사회 불만 세력에 의한 ‘모방 행위’ 등 4가지.
우편물에 의한 탄저균 등 세균 전파는 특정인을 상대로 이뤄진다는 특성이 있다. 정부 청사나 방송국 신문사 등이 목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내년 월드컵 때 수만명의 관중이 몰리는 경기장에서 생물테러가 발생할 경우 그 여파는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우려된다.
그러나 정부의 한 관계자는 “생물테러에 대해 각 부처가 아무런 감각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생물테러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요주의 인물을 누가 어떻게 관리할지, 생물테러가 발생할 경우 군과 경찰 중 누가 책임을 지며 어떻게 대처할지, 각 의료기관은 환자가 발생하면 국립보건원에 즉각 보고할 수 있도록 훈련돼 있는지 등 일사불란한 체계가 갖춰져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립보건원 관계자는 “기존의 방역 체계에 민관군으로 구성된 생물무기 전담반을 설치해 감시 기능을 높여야 하며 미국과 마찬가지로 ‘테러 예방법’을 제정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용관기자>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