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어디로 가야하나]"강대국 패권에 맞설 전략적 외교절실"

  • 입력 2001년 8월 13일 18시 32분


□4강외교 흔들린다

▽안병준 교수〓김대중(金大中) 정부는 한미일 대북정책 공조를 통해 4강외교를 비교적 잘 이끌어왔다. 그 결과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북한을 국제사회로 이끌어 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4강외교는 상당한 시련을 겪고 있다. 미국에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고, 일본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내각으로 바뀌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러시아는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중국도 내년이면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을 잇는 새로운 세대가 지도력을 갖게될 것이다.

▽공로명 전 외무장관〓현 정부 초기에 다져놓은 4강외교의 기초에 많은 변화가 오고 있다. 한미일 대북공조 체제는 부시 행정부의 출범으로 새로운 도전요소가 생겼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인식과 우리 정부의 그것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한국이 미국과 동맹관계, 일본과 동맹에 준하는 관계에 있다면 그 만큼의 배려를 해야 하는데, 지금 남북관계에 집착해 4강외교의 총체적인 그림을 잃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안 교수〓빌 클린턴 전 정부의 대외정책 기조는 북한 중국 러시아에 접근한다는 정책, 즉 ‘engagement policy’였다. 클린턴 전 정부의 대북 대중 대러정책은 종전의 적대적 국가에 개입정책을 펴 이들을 국제사회로 이끌어내고 세계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게이지먼트’의 과정 자체에 중점을 두는 정책이다. 부시 현 행정부는 인게이지먼트 그 자체를 목적이 아니라 전쟁을 억지하고 지역을 안정시키고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금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본다는 점에서 다르다.

▼글 싣는 순서▼
- 1. '국론분열-갈등' 치유의 길
- 2. 정치부터 바뀌어야 한다
- 3. 경제 어떻게 살릴 것인가
- 4. 교육에서 희망을 찾아라
- 5. 남북 문제 바른 해법은
- 6. 4강과의 외교관계 재정립을
- 7. 외국 전문가들의 충고

미국의 이런 대북 대러 대중 전략의 이전(移轉)을 우리가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앞으로 한미 공조는 북한과의 회담 자체도 중요하지만 회담을 통해 무엇을 이뤄낼 것인가에 더 중점을 둬야 한다. 이런 시각으로 한미간의 새로운 정책조율이 필요하다. 2월 한-러정상회담에서의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제한협상 파동, 평화선언에 대한 견해 차이 등으로 한미간 신뢰가 약화되지 않았는지 우려된다. 향후 한미관계는 전략목적을 공유함으로써 신뢰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 한일관계도 마찬가지다.

▽공 전 장관〓북한이 부시 미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간의 긴장이나 경쟁, ABM협상을 둘러싼 세계전략 차원의 미-러 긴장관계 등을 이용해 냉전시대와 같은 북-중-러 3각 동맹관계를 구성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정부는 출범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무엇을 4강외교의 중심으로 삼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역사교과서 왜곡문제,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문제 등 한일간 현안에 대해서도 냉정한 판단과 분석에 따른 균형감 있는 대응을 해야 한다.

□4강외교의 본질

▽안 교수〓한반도 문제를 4강간의 세력다툼에서 분리시키는 게 중요하다. 4강의 틈새에 끼어있는 한국은 동맹외교밖에 다른 길이 없다. 제일 중요한 것이 한미관계의 강화이다. 한미 양국은 대북 양자동맹 뿐만 아니라 통일 후의 중장기적 한미동맹에 대해 협의를 통해 재구성해야 한다.

앞으로 동북아에서는 미국 주도의 단극화 질서에 중국이 도전함으로써 미중간의 갈등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안정이나 남북 통일을 위해서는 미중간의 이런 갈등을 해소하고 미중일이 한반도 문제만큼은 협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에 부정적 역할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 러시아가 북한에 대해 군사원조를 재개하거나 미사일 부품이나 핵원료 등을 제공한다면 한반도에 엄청난 여파를 가져올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한반도를 대미관계의 일환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공 전 장관〓우리 스스로 진로에 대한 균형된 시각을 가져야 한다.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정부가 너무 매달린다는 인상을 준다. 이는 미국의 대북정책 우선순위 등과 괴리가 있고 일본의 대북정책과도 조화가 안 되는 측면이 있다. 이에 대한 한미일의 내부조정이 필요하다. 그런 것 없이는 우리가 고립될 우려가 있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벼랑끝 전술’을 펴더라도 미국의 필요에 따라 움직인다는 자세를 견지할 것이다. 일본의 ‘고이즈미 선풍’이 보여주는 국가주의로의 회귀 현상을 보더라도 일본 역시 북한과 쉽게 타협할 상황이 아니다.

□중국에 대한 환상은 금물

▽안 교수〓한반도 문제만큼은 중국이 미국과 협력할 수 있도록 우리가 대중관계를 잘 조절해나가야 한다. 막연하게 중국에 호의적인 태도를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중국은 대대로 한반도에서 세력균형 정책을 취하면서 자국 이익을 추구하는 정책을 펴 왔다. 막연하게 ‘중국은 우리편이다’ ‘무엇이든 우리를 돕는다’는 식으로 인식하면 대단히 위험하다. 중국은 대미, 대일관계의 일환으로 한반도를 보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미일과 협조할 수 있도록 대중관계를 현실주의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공 전 장관〓일본과 비교할 때 중국에 대해서는 관대한 이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다. 19세기에 중국이 한반도에서 무엇을 했는지를 잊지 않았다면 그런 안일한 인식은 고쳐져야 한다. 92년 한중수교 이후 양국 정상이 만날 때마다 ‘한중 어업협정을 빨리 체결하자’고 요구했지만 겨우 지난해에야 체결됐다. 중국이 얼마나 실리주의 국가인지, 또 덩치가 큰 만큼 얼마나 위협적인지는 지난해 마늘분쟁을 봐도 알 수 있다. 우리가 898만달러 어치의 마늘에 대해 관세를 올렸는데 중국은 5억달러가 넘는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의 수입을 중단시켰다. 중국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매우 중요한 나라이지만 그만큼 우리에게 압력이 된다는 점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한미동맹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뒤에서 받쳐주는 힘이 있어야 한다.

▽안 교수〓안보와 경제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지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97년 외환위기가 왔을 때 미국은 미군이 주둔하는 나라에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적극 지원하고 그렇지 않은 나라에는 소극적으로 대응했다고 한다. 대미, 대일관계가 원만해야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에 대한 신인도가 높아지고 대한 투자도 늘어난다. 그것이 현실이다. 안보와 경제는 이제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같이 간다.

□4강외교의 해법

▽공 전 장관〓정부의 대북 햇볕정책에 대해 국민 대다수는 지지하고 있다. 북한과의 화해협력을 통해 전쟁의 위협을 제거하고 통일의 길을 마련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국제사회도 이를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국민이 납득하고 지지할 수 있는 절차와 방법을 구사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비판 없이 국민이 무조건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최근 러시아 이타르타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반도의 반은 미군에 점령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북한이 대화의 파트너인 한국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주한미군 문제만 해도 그렇다. 북한 정책을 대변하는 북한 방송에서는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데, 다른 한쪽인 우리가 북한이 용인했다고 하면 혼란만 가져온다. 북한문제는 좀더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4강외교와 직접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 인식의 차이가 대미, 대일관계의 신뢰문제와도 연결된다.

▽안 교수〓하나의 과정으로서 남북간의 평화와 화해협력은 시작됐다고 본다. 향후 과제는 이 과정을 제도화해 한반도에 전쟁이 없고 대량파괴무기가 없는 평화의 상태가 되도록 정착시키는 일이다. 미-일-중-러가 이에 협력할 수 있도록 4강외교를 추진해야 한다.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의 외교는 주어진 현실을 직시하고 그 현실의 개선을 추구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나라와 협조해야 한다.

▽공 전 장관〓김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은 한미일 공조이다. 차관보급의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보다 높은 레벨에서 근본적인 전략문제를 협의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것을 통해 신뢰 회복의 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4강외교뿐만 아니라 남북관계도 국내 정치를 떠나 초당적인 추진체제를 가져야 한다. 그 방법으로 미국처럼 초당적이면서도 권위적인 외교정책 연구기구를 만드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안 교수〓중장기적인 한미동맹을 재정립하기 위한 한미간 위원회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정치인, 학자, 시민단체 등이 모여 한미동맹의 미래 등에 대한 공동의견을 내고 토론하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대북정책조정관을 폐지했지만 우리 정부는 외교정책을 야당 등과 직접 협의하며 초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특사 제도 등을 검토해볼 만하다. 그것은 외교의 비정치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우리 같은 중진국은 국내정치에 따라 4강외교를 하면 우리가 추구하는 국가이익에 손상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손해볼 가능성도 있다. 정부도 분석에 근거한 외교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경제정책은 통계나 여야간 정책협의 등을 중시하는데, 외교는 그런 게 없는 것 같다. 선진국처럼 전략과 분석, 즉 지적 투입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보니 국내 정치 등 시류에 탄 순간적인 임기응변에서 외교정책이 나온다.

▽공 전 장관〓남북관계나 한미간의 신뢰문제가 국내 쟁점화하면 별별 얘기가 다 나온다. 대일관계도 그렇다. 한일간의 넘기 어려운 벽을 깬 김 대통령이 왜 입을 다물고 있는지, 그리고 대일 강경노선에 기름을 붓는 발언을 하는지 모르겠다. 모든 게 다 국내정치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정리〓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약력▼

공로명

△1932년 출생

△서울대 법대 졸

△주 소련(현 러시아) 초대 대사

△외교안보연구원장

△외무부장관

△동국대 석좌교수(현)

안병준

△1936년 출생

△연세대 정외과 졸

△미국 컬럼비아대 정치학 박사

△미 웨스턴 일리노이대 교수

△한국국제정치학회장

△연세대 정외과 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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