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시 저지대 주민 "보름에 두번 잠기다니…"

  • 입력 2001년 7월 30일 18시 55분


“2주일 동안 두 차례나 물난리를 겪어야 하다니 어이가 없습니다. 하수관로를 충분히 점검해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 아닙니까.”

15일 집중호우로 침수된 경기 광명시 일대 저지대가 29일 폭우로 또다시 잠기자 주민들은 ‘엎친 데 덮친’ 재난에 망연자실하고 있다. 29일 오전 5시부터 1시간 사이 61㎜의 폭우가 쏟아져 170여 가구가 크고 작은 비 피해를 보았다. 15일에는 하루 동안 240㎜의 집중호우가 내려 주택 지하상가 소규모 공장 등 3700여 건물이 피해를 보았다.

▼관련기사▼

- 중부 이틀째 폭우…8명 사망·실종
- 변덕심해 예측 어려운 '게릴라 호우'

피해를 가장 많이 본 지역은 광명 6동 1, 2통 일대. 주택 반지하 60여 가구가 물에 잠겼다. 20여 가구는 새로 깐 장판과 벽지를 비롯해 세간살이가 완전히 젖었다.

주민 이모씨(37·주부)는 “시에서 지원한 보조금으로 새로 장판을 깐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폭삭 젖어버렸다”면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30일 오후 빗발이 잠시 가늘어졌지만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주민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 주민들은 “올해 들어 하수구를 정비하는 모습을 한번도 못 봤다”면서 광명시의 부실한 수방대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주민 김장곤씨(37)는 “29일 오전 10시경 광명시청 상황실에 전화를 걸었지만 무성의하게 전화를 받더라”면서 시의 안일한 대응에 불만을 터뜨다.

광명시는 “29일 새벽 주민에게 대피할 것을 안내하고 담당 공무원들을 동별로 배치시켜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주민들의 주장과 엇갈렸다.

광명시 관계자는 “하수처리 용량이 부족해 물이 역류했다”면서 “목감천과 안양천변에 모두 7곳의 대형 배수펌프장이 설치돼 있지만 한 시간에 60㎜ 이상 비가 쏟아지면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인천 서구 석남1, 2동도 15일에 이어 이번에도 빗물이 하수관으로 흘러들지 못한 채 넘쳐 저지대 가정마다 물난리를 겪었다. 하수관 역류로 침수피해를 본 이 지역 500여 가구 주민들은 30일 내내 청소로 하루를 보냈다.주민 이모씨(48)는 “빗줄기가 거세지면 하수가 역류해 이번 장마철에는 새벽부터 물을 퍼내는 것이 일상사가 됐다”며 대책을 호소했다.

<광명·인천〓이진한·김현진·박희제기자>yc97@donga.com

▼상습침수 한탄강유원지 "목숨건 생업 언제까지" ▼

“목숨을 걸고 생계 꾸리는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할지….”

상습 침수 지역인 경기 연천군 연천읍 연천리 한탄강 국민관광지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이승규씨(52)의 하소연. 30일 오전 침수에 대비해 1층 가게의 집기들을 2층 옥상으로 옮겨놓고 텅빈 유원지를 바라보는 이씨의 표정에는 ‘망연자실’만이 남아 있었다. 지난주 일요일 폭우 때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기를 2층으로 옮겨놓은 뒤 영업을 위해 한 주일 내내 정리를 했는데 또 ‘이사’를 하게 됐던 것이다.

그는 “침수 피해는 보지 않았지만 내내 불안에 떠느라 장사는 포기한 상태”라며 “더 이상 이겨낼 방법이 없어 내가 떠날 생각”이라고 말했다. 1층 바로 아래까지 물이 찬 뒤 30일 오후 물이 빠지자 주차장은 쓰레기와 진흙으로 뒤덮여 있었다. 물놀이용 ‘오리보트’들도 뒤집히거나 쓰러진 채 진흙바닥에 뒹굴고 있어 정상 영업은 아득해 보였다.

다행히 인근 군부대 장병들이 ‘이사’를 도와주고 있지만 또 언제 닥칠지 모르는 수해 때문에 상인들은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

일미식당 김영순씨(48·여)는 “비만 오면 짐을 싸는 버릇이 생겼다”며 “피해 다니기만 해야 하니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의 가족은 세탁기와 냉장고 등 덩치 큰 가전제품은 아예 트럭에 실어놓고 언제든 대피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고 있었다.한탄강이 위험수위인 6m를 넘어 한때 9m를 위협하자 상습 침수 지역인 연천군 청산면 백의2리와 장탄1, 2리 주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공무원들이 긴급 출동하기도 했다. 연천군 주민들은 이번에는 큰 피해를 면했지만 해마다 반복된 수해 때문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또 이날 오전 6시경 연천군 청산면 대전리 청산산업 채석장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조립식 사무실에서 잠자던 김형오씨(42·전남 장성군 황룡면)와 김영미씨(42·여·경기 동두천시 소요동)가 숨지고 유흥재씨(45)는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연천〓이동영기자>argu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