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음도 체벌도 이겼건만"…예지학원 삼수생의 좌절된 꿈

  • 입력 2001년 5월 18일 18시 35분


‘매일 보는 단어시험은 항상 떨린다. 1개 틀려도 열대를 맞아야 한다니. 암튼(아무튼) 나이들어 고생이 크다.’

16일 경기 광주의 기숙학원인 예지학원 화재로 중상을 입은 이도호(李道浩·21)씨는 삼수생. 올해 3월 이 학원에 들어와 사고발생 전날인 5월15일까지의 일상생활을 일기장에 적었다. 이씨는 화재당시 질식해 폐에 열(熱)이 들어가는 중상을 입었다. 17일 밤 서울 한강성심병원에서 만난 이씨는 내과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산소호흡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그에게 당시 상황을 묻자 눈을 감아 버렸다. 이내 눈물이 흘러내렸다.

‘밤이 깊어 갈수록 졸음이 몰려오고 무기력해진다.’ ‘작년에 재수를 해서 200점이나 점수를 올려 360점 맞고 대학에 들어갔다는 아이가 왔다. 자극이 됐다.’

이씨의 일기장에는 ‘공부’이야기 뿐이었다. 사고 바로 전날까지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아가며 나태해지려는 자신을 다그쳤다. 두차례 입시에 낙방한 그는 올해야말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겠다며 ‘해낼 수 있다’를 주문처럼 외웠다.

일기장에는 이런 구절도 보인다.

‘난 멍청하지 않아. 난 정신력이 강해서 잠을 쫓을 수 있어. 난 할 수 있어.’

‘난 천재가 아니지만 천재가 될 가능성은 있다.’

공부와의 싸움이 너무 처절해서 차라리 애달플 정도다. 그러나 이씨의 대학 진학 꿈은 이제 좌절될 위기에 놓여 있다.

남편 월급의 절반을 학원비로 쏟아 부었다는 어머니 노안숙(盧安淑·47)씨는 “4년제 대학 못 나오면 사람 대접 못 받는다고 학원에 보냈다”며 “제발 건강하게 다시 일어서만 주면 원이 없겠다”며 오열했다.

<김창원·김정안기자>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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