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 루게릭병 환자 치료성금 병원 기탁

  • 입력 2001년 3월 16일 22시 48분


“이미 불치(不治)의 환자가 된 내겐 치료비가 필요 없습니다. 앞으로 이 병으로 고생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치료법 개발에 써주세요.”

루게릭병(ALS)으로 집에서 요양중인 이정희(李庭姬·52·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사진)씨는 16일 서울 배화여고 동기생들이 자신의 치료비로 모아준 3200만원을 서울대병원에 기탁했다.

루게릭병은 세계적으로도 아직 치료방법이 개발되지 않은 불치병으로 감각과 정신이 정상인 상태에서 온몸의 근육이 위축, 3년 이내에 환자의 50%가 호흡곤란으로 사망하는 병.

학원 수학강사였던 이씨는 93년 갑자기 숟가락도 들기 어려울 정도로 힘이 떨어져 병원을 찾았으나 별다른 이상을 찾지 못하다 96년 서울대병원에서 루게릭병으로 판정받았다.

이씨는 “산악회에 가입할 정도로 건강에 자신이 있었던 내겐 당시의 판정이 청천벽력 같았다”며 “한사람의 희망을 연장하는 것보다 치료법 자체를 개발하는 게 더욱 급하다고 생각돼 그 돈을 서울대병원에 기탁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다행히 아직 언어장애 등의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남편 김모씨(67)와 휠체어의 도움 없이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다.

2월 모방송 다큐프로그램을 통해 이씨의 사연이 알려진 뒤 치료비를 모아준 이씨의 배화여고 17회 동기생들은 이씨의 뜻에 흔쾌히 동의했다.

이씨의 주치의인 이광우(李光雨·서울대병원 신경과장) 한국ALS협회 회장은 “이 돈을 루게릭병 환자와 가족들에게 질병치료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한해 1000여명이 발생하는 국내 루게릭병 환자들을 위한 전문 의료시설을 설립하는 데 보태겠다”고 말했다.

<최호원기자>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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