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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0월 26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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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간격으로 잇따라 터진 한빛은행과 동방금고 불법대출 사건은 ‘권력형 비리’의 가능성이 높게 제기되고 있다. 불법대출금의 행방이 묘연한데다 비리를 적발해 고발한 곳이 오히려 의심을 받는 점 등에서 ‘닮은꼴’이라는 시각이 많다.
우선 두 사건 모두 법규정을 피하기 위해 제3자를 동원해 ‘정상 대출’의 구색 갖추기에 주력했다.
동방금고는 주주 대출은 안된다는 조항을 피해 김모 이모 홍모씨 등 16명의 이름을 동원했다. 이른바 ‘바지’로 불리는 이들은 일정액의 사례금만을 받고 명의를 빌려줘 대출받게 한 뒤, 그 돈이 정현준 한국디지탈라인(KDL)사장이나 이경자 동방금고 부회장의 손으로 넘어가도록 했다. 한빛은행 관악지점은 한 회사(아크월드)에 대출을 집중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60여개 회사의 신용장을 위조해 대출한 돈을 아크월드에 주었다.
사건의 주도자들이 청와대의 특정인과 인척 관계에 있으며, 권력층과 친하다는 점을 내세웠다는 점도 닮은꼴이다. 박해룡 아크월드 사장이 박지원 전문화관광부 장관과 먼 친척이고 장래찬 전금감원 국장은 박준영 대통령 공보수석비서관의 조카사위다. 정사장이나 이부회장도 청와대 실세와 관계가 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동방금고와 관악지점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오랫동안 ‘업무 검사’를 받지 않고 방치돼 왔다는 점도 일치한다. 동방금고가 마지막 검사를 받은 것은 97년2월. 외환위기로 경영이 악화됐고, 99년10월 최대 주주가 벤처기업가(정사장)와 사채업자(이부회장)로 바뀌었으며, 정사장과 이부회장이 최대 주주인 인천 대신금고가 불법대출로 사장이 면직됐는데도 ‘무풍지대’로 남겨졌다. 한빛은행은 관악지점도 상시 검사에서 배제해 결과적으로 불법대출을 방조했다.
사건이 터진 이후 뒤처리도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금감원은 14일부터 동방금고에 특검을 시작하면서 유조웅 사장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해외 도피를 방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장전국장에 대해서도 잠적을 방조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한빛은행 본점 역시 1월 관악지점의 불법대출 징후를 포착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7개월만에 검찰에 고발하는 바람에 오히려 대출 과정에 내압을 가했다는 의심을 받아 본점 고위 간부들이 수차례 검찰에 불려다녔다.
<홍찬선·김승련기자>hcs@donga.com
▼서울지검 이기배차장 문답▼
서울지검 이기배(李棋培)3차장은 26일 “한국디지탈라인 정현준 사장과 동방금고 이경자 부회장이 ‘불법대출 주동자’로 서로 상대편을 지목하는 등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고 조사 실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불법대출 경위를 우선 파악한 뒤 범법사 실은 모두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사장이 로비를 벌인 정관계 인사 리스트가 있다고 인정했나.
“리스트의 존재는 물론 자신이 직접 로비를 했다는 사실도 부인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서 이부회장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나.
“하지 않았다.”
―검찰이 한국디지탈라인 주가 조작 혐의에 대해 조사하며 그에 연루된 정관계 인사들의 리스트를 작성했다는 말이 있는데….
“그런 사실 없다.”
―정사장이 만든 사설펀드에 투자한 사람들도 조사하나.
“사설펀드 투자자들이 직무상 취득한 정보를 이용해 투자하는 등의 위법을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면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사설펀드 투자자 중에 정관계 주요 인사가 있나.
“눈에 띄지 않더라. 알려졌던 것만큼 대단한 인물들이 연루된 것 같진 않다.”
―정사장이 불법대출 자금중 40억원이 로비자금으로 사용됐다고 진술했나.
“그런 사실 없다. 다만 이부회장이 10억원 가량을 로비하는데 사용했다는 게 정사장의 진술이다.”
―금감원의 사건 은폐 의혹에 대한 수사는….
“불법대출 부분부터 하고 차근차근 해 나가겠다.”
―금감원에서 사건 관련 자료를 얼마나 넘겨받았나.
“오늘 수사에 필요한 부분은 대부분 전달받았다. 수천페이지에 이른다.”
―정사장과 이부회장에 대한 신병 처리를 어떻게 할지 결정됐나.
“아직 안됐다. 조사를 좀더 하고 내일까지 확정할 것이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