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에 다리만 잃은게 아니에요"…접경지 개간하다 사고

  • 입력 2000년 7월 13일 19시 18분


“정신을 차려 보니 내 다리가 없더라고….”

평생 농사일에 매달리다 지뢰로 한쪽 다리를 잃은 김동필씨(61·경기 파주시 파평면 장파리). 그는 통일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개발 열풍이 불고 있는 경기 북부 민통선 지역내 농지개간 사업장에서 인부로 일하다 지뢰를 밟아 장애인이 됐다.

사고를 당한 5월 14일 오전 10시반경 민통선 지역인 경기 연천군 백학면 갈현리 일대. 11만여평의 농지가 개간되던 이 곳에서 김씨는 민간 지뢰 제거업자의 보조원으로 지뢰가 제거되면 빨간 표지를 매다는 일을 하고 있었다. 사고 전날 들짐승이 그동안 매달아 놓은 표지들을 헝클어 놓은 상태에서 이를 매만지기 위해 첫발을 내딛는 순간 ‘펑’하는 소리와 함께 의식을 잃었다. 대인지뢰를 밟았던 것.

병원으로 옮겨져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오른쪽 무릎 아래가 절단된 상태였다. 아무 일도 할 수 없어 당장 생계가 어렵게 되자 그의 부인은 읍내로 나가 청소부일을 시작해야 했다. 그는 이런 아내를 볼 때 가장 가슴 아프다.

하지만 개발 현장 하청업자들에게 치료비 700만원을 받은 것 이외에는 아무런 보상도 없었다. 군 당국은 ‘개발을 신청한 토지 주인에게 승인해 준 이외의 땅에서 사고가 났기 때문에’, 토지 주인은 ‘내가 직접 고용하지 않은 인부가 작업하는 도중 사고가 났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모두 보상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하지만 김씨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뭣 하러 지뢰 제거 작업을 했겠느냐”며 민간 지뢰 제거업자와 하청업자 등을 형사 고발한 상태.

인접한 파주시의 경우 지난해에만 민통선 내 농지 개간 허가가 난 면적은 28건 15만6500㎡에 이르는 등 남북 화해 무드를 타고 접경지 개발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파주시 관계자는 “통일이 되고 민통선이 개발되면 선점한 사람이 땅을 불하받을 수 있는 우선권을 갖기 때문에 개간 허가 신청이 최근 크게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지뢰 관련 시민단체들도 지뢰 문제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 대인지뢰대책회의 조재국 집행위원장(안양대 교수)은 “이번 지뢰 사고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활발해지고 있는 민통선 지역 내의 개발 사업에 동반되는 전형적 사고”라며 “정확한 경위 조사를 통해 국가와 군당국을 상대로 예방책과 보상책을 촉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교회 여성연합회도 지뢰사고 예방을 위해 14일과 27일 이틀 동안 연천군에서 ‘대인 지뢰 예방 교육’과 ‘대인 지뢰 금지 운동 정책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동영기자>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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