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삼성SDS 신주인수권 행사못해"

  • 입력 2000년 5월 9일 18시 58분


삼성SDS가 이건희(李健熙)삼성그룹회장의 장남 이재용(李在鎔)씨 등 특수 관계인에게 신주인수권부 사채(BW)를 저가로 발행한 것은 무효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합의 12부(오세빈·吳世彬부장판사)는 9일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 김은영씨가 “삼성SDS가 BW를 이재용씨 등 특수 관계인에게 저가로 발행했다”며 이씨 등을 상대로 낸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신청 항고심에서 1심 결정을 취소하고 참여연대측의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BW 인수자인 이재용씨 등 이회장 자녀들과 삼성 임원인 이학수 김인주씨 등은 본안 소송에서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신주인수권을 행사하거나 양도 등 처분 행위를 하지 못하게 됐으며 삼성SDS도 주식을 발행해 주지 못하게 됐다.

BW는 회사의 신주를 정해진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가 붙은 회사채로, 삼성SDS는 이를 통해 이씨 등에게 발행 당시 5만4000여원에 이르는 회사 주식을 7150원에 인수하는 권리를 줌으로써 막대한 평가 차익을 안겨 줬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삼성SDS는 회사 정관에서 BW를 발행할 경우 발행가격 등 신주인수권의 내용을 구체적이고 확정적으로 정하지 않은 채 이사회에 그 결정을 포괄적으로 일임했는데 이는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도록 한 상법 규정에 반하므로 무효”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신주인수권의 내용에 대해 정관에 구체적인 규정이 없을 경우에는 주주총회의 특별 결의를 거쳐야 하는데도 삼성SDS는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발행 절차상에 중대한 위법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신주인수권의 내용을 일임받은 삼성SDS 이사회는 이재용씨 등에게만 신주인수권을 부여하기로 내부적으로 결정하고 신주발행가액을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책정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삼성SDS 이사회는 지난해 2월26일 제3자 배정 방식으로 230억원의 BW를 발행한 뒤 같은 날 이재용씨 등에게 모두 매도했다.

삼성SDS는 당시 신주발행가액을 결정하면서 과거의 수익 가치만 반영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의 평가 방법을 편법적으로 적용해 1주당 7150원으로 정했다. 당시 삼성SDS의 주가는 장외 거래 가격으로 5만4750원이었으며 8일 현재 장외시장 기준가가 44만원에 이르고 있다. 참여연대는 삼성SDS가 BW를 저가에 발행하는 바람에 이회장 자녀들의 지분이 14.8%에서 25.1%로 높아지는 대신 일반 소액주주들은 18.3%에서 14.5%로 감소했다며 지난해 11월 삼성SDS의 이사들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고 이재용씨 등을 상대로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참여연대의 신청을 기각했으며 참여연대는 이에 불복해 곧바로 항고하고 지난달 29일에는 이재용씨 등을 상대로 본안 소송인 신주인수권부사채 무효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삼성SDS측은 “당시 신주발행가액은 회계 법인에서 평가한 가치를 기준으로 정한 것으로 편법 변칙 증여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며 “본안이 확정될 때까지 당분간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주인수권부사채(BW·Bond with Warrant)▼

일정기간이 지난 후 정해진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가 붙어 있는 채권. 일반적으로 만기는 3년이며 채권발행 3개월 후부터 권리행사가 가능하다.

발행기업의 주가가 낮으면 채권형태로 보유해 이자를 받을 수 있고 주가가 오르면 신주인수권을 행사(주식으로 전환)해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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