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태정-박주선씨 검찰 출두하던 날]

  • 입력 1999년 12월 3일 23시 18분


사실상의 피의자 자격으로 검찰에 소환된 김태정(金泰政)전법무장관과 박주선(朴柱宣)전대통령법무비서관.

3일 오전과 오후 대검찰청 현관에 각각 들어선 두 사람의 모습은 대조를 이뤘다. 김씨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석고처럼 굳은 표정이었고 박씨는 뭔가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다.

★金씨 잠 설친듯 눈충혈

김씨는 법무장관에 임명된 5월24일까지 1년10개월간 이 건물의 최고책임자이자 검찰의 총수였다.

검사생활 30년 가까이 요직을 거치며 법무장관까지 지낸 그는 잇따라 터지는 카메라플래시에 눈을 깜박이며 취재진이 소감을 물었지만 작심한 듯 입을 굳게 다물었다. 밤잠을 설친 듯 눈은 충혈돼 있었고 야윈 얼굴이 그의 곤혹스러운 심정을 대변하는 듯 했다.

★"후배 검사들에 미안"

그에게 소환이 통보된 것은 2일 오후. 그는 신광옥(辛光玉)대검 중수부장과의 전화통화에서 “검찰 후배들에게 미안하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짧은 사진촬영이 끝나고 김씨는 7층 중수부장실에서 후배 검사가 건네는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신중수부장은 그에게 조사에 적극적으로 응해줄 것을 정중히 부탁했다. 김전장관은 간혹 헛기침만 할 뿐 여전히 말을 아꼈다.

중수부장실을 나온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1층 조사실로 향했다. 엘리베이터가 8층을 지나는 순간 그의 눈이 흐려졌다. 8층에는 검찰총장실이 있고 6개월 전만 해도 그는 그 곳에서 일했다.

★朴씨 "대통령에 누끼쳐"

주임검사인 박만(朴滿)감찰1과장이 대선배인 그를 ‘피조사자’로 맞았다. 이종왕(李鍾旺)수사기획관은 김전장관에 대한 호칭에 대해 “조사의 법적 의미가 있는 만큼 분별해서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관님’이나 ‘총장님’같은 존칭은 쓰지 않겠다는 뜻이고 실제 그랬다고.

이날 오후 3시 대검청사에 모습을 드러낸 박전비서관은 “대통령 비서관으로서의 도덕적 법률적 책임을 떠나 대통령에게 누를 끼치고 국민에게 심려를 드려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옷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축소 은폐 의혹을 받는 것은 대단히 안타깝다”며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다.

이들 두 사람이 소환된 대검 청사는 이날 하루종일 무거운 침묵과 깊은 탄식에 싸여 있었다.

★일부 검사장 "할말 없다"

박순용(朴舜用)검찰총장 등 수뇌부는 침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박총장은 이날 대구지검 김천지청 준공식에 참석하기 앞서 수사팀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일부 검사장들은 사법처리를 전제로 한 전직 검찰총수의 소환에 대해 허탈한 표정으로 “할 말이 없다”며 말문을 닫았다.

그러나 일선 검사들은 ‘발전적 해결’을 주문했다.

대검의 한 검사도 “살을 도려내는 아픔은 있지만 이들을 엄정하게 처리해야 한다”며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일부 출세지향적인 검사들 때문에 일어난 사태로 검찰 조직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며 “빨리 사태를 수습해야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부형권·정위용·김승련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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