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40여명 'IMF반성회']"경제대란 우리탓이오"

  • 입력 1999년 12월 3일 19시 15분


“독서량이 부족한 교수, 인맥을 따지며 경쟁을 하지 않는 교수사회, 대학을 사유물로 취급하는 재단…. 이것들을 깨부수지 않으면 한국경제학도, 한국경제도 미래가 없다.”

3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 1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국제회의실에 40여명의 중진 경제학자들이 모였다.

모임의 목적은 ‘자아비판’. IMF 구제금융 이후 2년여 동안 벌어진 경제대란에도 불구하고 시의적절한 ‘처방전’을 제시하지 못한 데 대한 뼈저린 반성을 나누는 자리였다. 자기비판에 익숙한 소장파 교수들보다 김병주 서강대국제대학원장,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장, 김윤환 고려대명예교수 등 원로급 교수들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비판은 한국경제학의 ‘무국적성(無國籍性)’과 취약성에 집중됐다. 이지순 서울대교수는 “스스로 ‘경제학이면 경제학이지 한국의 경제학이 따로 있을까’하는 의문을 가져왔다”고 털어놓고 “한국경제학이 소비자(한국경제)의 욕구를 잘 충족시켜 왔는지 검토해보자”고 제안했다.

이교수는 특히 “한국경제학이 사실에 바탕을 둔 분석적 연구에 소홀하다는 비판은 학교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며 “자기는 학교에 은둔하면서 언론 등에 보도된 다른 학자의 견해를 낮춰보는 관행이 ‘외국학자 선호현상’을 낳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윤환 교수는 “한국경제학은 독자성이 없으며 미국에서 들여온 주류경제학의 일방적 영향과 그에 입각한 정책이 비판을 받고 있다”면서 “다양한 시각에서 한국경제를 연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제학자들의 반성회에 앞서 지난달 29일 열린 경영학계의 자아비판도 신랄했다. 김인수 고려대교수는 “도대체 40년의 연륜을 자랑하는 국내 경영학계에 ‘한국적 경영학’이란 게 있었느냐”고 반문했다. 대부분의 교수들이 미국유학을 다녀와 통계적 접근법에만 의존하면서 가장 중요한 ‘현장’을 소홀히 다뤘다는 지적.

사례연구를 연구실적에 포함시키지 않는 평가기준도 도마에 올랐다. 황일청 한양대교수는 “생산관리를 가르치는 교수들이 기업 공장에도 가보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경제경영학계의 이례적인 ‘반성회’를 후원한 삼성경제연구소는 예상보다 참석 인원이 적자 섭섭한 표정. 그러나 한 관계자는 “단기간에 주제발표문이 작성된 것을 보니 반성회에 참석한 교수들은 이같은 자리가 절실하다는 생각을 평소 해온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연구소는 토론회 전문을 책자와 인터넷(www.seri21.org)을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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