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원 수사/일기장 3권]자기합리화 「대외용」인듯

  • 입력 1999년 7월 18일 19시 48분


“권력을 쥔 자가 범죄행위를 했을 때 처벌은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사형수를 포함한 일반 범죄자들)의 죄가 큰가, 아니면 전두환 노태우와 그들의 추종자들, 김현철, 김영삼정권 당시 권력의 수뇌부들의 죄가 더 무거운가. 김현철이가 병보석으로 풀려난 것으로 안다. 그가 정말 곧 죽을 정도로 병이 깊은가…. 정말 우습다.”

경찰이 압수한 신창원의 소지품 가운데는 3권의 일기장이 포함돼 있다.

신이 은신했던 아파트와 승용차안에서 발견된 이 일기장은 신의 도피 및 범죄행각을 추적하는데 단서가 될 만한 내용이 들어 있을 것으로 보여 관심의 초점이 됐다.

그러나 18일 경찰이 보관중인 이 노트를 확인한 결과 일기라기 보다는 대부분 자신의 감상이나 주장을 적어놓은 글이었다. 100여쪽 분량의 노트에 적은 이 글은 자신을 합리화하고 자신에 대한 사회적 관심에 스스로 대답하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

특히 세 권에 담긴 글이 상당부분 겹치는 점으로 미뤄 검거됐을 때 자신의 입장을 세상에 전하려는 ‘대외용’으로 쓴 것으로 분석된다.

몇 대목을 빼고는 날짜와 실명언급이 없어 수사 단서가 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였다. 신의 글은 짧은 학력치고는 어휘가 비교적 다양했으며 한글맞춤법도 틀린 곳이 거의 없었다.

신의 메모중 몇 대목을 옮겨본다.

△이 글을 쓰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범죄자가 무슨 낯짝으로 이런 글을 쓰느냐고 해도 좋다. 나를 향한 모든 욕을 다 감사히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단 한번만이라도 다 함께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첫째, 현행 행형법에 문제점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혹행위가 일어날 수 있는 원인이 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한번 행형법을 봐 줬으면 한다. 둘째, 교도소가 너무 폐쇄되어 있다. 교도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데 각종 비리나 가혹행위를 근절시킬 수 있겠는가.

△범죄는 순간적이다. 범죄를 하고 있는 순간에는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일을 하고 있고 그 행위가 얼마나 잘못됐는가를 느끼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고 자신을 뒤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된다.…일반 범죄자는 검거가 되면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되고 피해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된다. 그리고 자신에게 무거운 처벌이 내려져도 달게 받는다.

△정치인들과 가진 자들이 풀려나는 창구가 무엇인가. 바로 병보석 형집행정지 특별사면이다. 그들이 죄를 뉘우치고 있다면 이해를 할 수도 있다. 과연 그들이 진심으로 속죄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순천〓김 권기자〉goqu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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