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 와해위기/해결책은 없는가?]

  • 입력 1999년 2월 25일 19시 24분


올 봄 산업현장을 불안케하는 노동계의 ‘춘투(春鬪)’움직임은 정부와 노동계 양측 모두 쓸 수 있는 카드가 거의 없는 상태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양측이 서로 더이상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에 서서 대치해 있는 형국인 것이다.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탈퇴, 한국노총의 조건부 탈퇴 방침 천명이 나온 배경이 된 노정(勞政)갈등의 ‘태풍의 눈’은 정리해고 문제다.

▼춘투방향

개별 사업장에서는 이미 대규모 쟁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당장 26일 민주노총 최대 산별조직인 금속연맹 산하의 현대기아 계열 노조가 정리해고 중단을 요구하는 경고파업을 잡아놓고 있다.

27일 서울에서 대규모 장외집회를 여는 것을 시작으로 다음달 7일까지 연맹별로 조합원 비상총회 형식의 투쟁계획을 준비중이다. 전국 단위노조 대표자 수련대회, 단위노조별 쟁의행위 찬반투표 등을 거쳐 총파업 투쟁도 불사할 계획. 민주노총은 3,4월 총력투쟁을 주도할 비상기구로 ‘구조조정 및 생존권 사수 중앙투쟁본부’를 발족시켰다.

경총의 임금동결 방침은 노동계 움직임에 또다른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각각 전년도 대비 7.7%와 5.5%의 임금인상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고용유지를 위해 불가피하게 임금삭감을 감수했는데 정리해고까지 당했다는 불만이 깔려 있다. 물론 경총은 경제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 결국 치열한 노사갈등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노동계는 정리해고 중단을 위한 3,4월 총력투쟁을 임금인상 투쟁과 결부시킬 방침이다. 민주노총 정성희(鄭星熙)대외협력국장은 “임단협 시기를 앞당겨 정리해고 중단 투쟁과 연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한국노총도 성명을 내고 “구조조정을 빌미로 노동자의 생존권을 박탈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며 강력히 비난하고 나섰다. 결국 정리해고 중단과 임단협 투쟁이 맞물려 노사정위 파행이 장기화되고 장외투쟁의 강도도 거세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경제 전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그만큼 커질 수 있다.

▼노동계 내부사정

양대 노총의 선거와 관련된 지도체제 문제도 중요한 변수다. 산별 연맹의 위원장 선거를 치르면서 노사정위에 대한 평가가 주요 이슈로 떠올랐고 자연 강경기조가 분위기를 주도했다. 금속연맹 위원장 선거 때는 입후보한 3명의 후보가 모두 노사정위 탈퇴를 공약으로 내걸었을 정도였다. 여기에 3월 중순경으로 예정되어 있던 민주노총위원장 선거도 상승작용을 했다. 그러나 24일 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총은 ‘장외투쟁을 힘있게 전개해 나가기 위해’ 선거를 연기하고 상반기 중 현 이갑용(李甲用)위원장 체제를 유지키로 했다. 이위원장은 “대화를 하되 장외투쟁에 주력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한국노총의 경우 26일 대의원대회에서 박인상(朴仁相)현위원장이 차기 위원장으로 선출될 게 확실한데 현장의 ‘흉흉한 정서’도 문제지만 민주노총과의 선명성 경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계의 불신

그러나 노동계는 정부에 대해 불신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1기, 2기 노사정 합의사항인 △부패방지법제정 △노조의 정치활동보장 △구속노동자석방 및 사면복권 △불법부당 노동행위 근절 등이 정부 내부, 또는 재계와의 관계 때문에 이행되지 못하거나 왜곡된 측면이 많았다는 불만이다. 정리해고라는 ‘목숨’을 내놓고 ‘부도날 지 모르는 어음’만 받았다는 불만인 것. 선(先)노사정 복귀, 후(後) 현안 논의는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정용관기자〉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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