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당선자 고향 표정]선두 굳어지자 일제히 횃불밝혀

  • 입력 1997년 12월 19일 06시 19분


전남 목포에서 뱃길로 2시간반 남짓 거리인 서남해의 외딴섬 전남 신안군 하의면 하의도 (荷衣島).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 당선자의 고향인 이 작은 섬은 19일 새벽 김당선자가 당선권에 들어서자 섬 전체가 떠날갈 듯한 환호로 뒤덮였다.

집집마다 불을 환히 밝힌 채 가슴 죄며 TV를 지켜보던 마을 주민들은 『김대중 만세, 하의도 만세』를 외치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얼싸안았다.

누군가가 「DJ노래」라고 불리는 「목포의 눈물」을 선창하자 모두들 따라 부르며 감격어린 눈물을 흘렸다. 주민들은 당선이 결정될 때 밝히기로 한 1백여개의 횃불을 들었다.

마을 노인당에 모여있던 주민들도 아껴뒀던 소와 돼지를 잡고 막걸리잔을 돌렸다. 몇몇 주민들은 마을 어귀와 골목길에서 농악대의 꽹과리와 북 장구소리에 맞춰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기도 했다.

김당선자의 큰형수 박공심(朴公心·75)씨는 『이런 날이 언젠가는 올 줄 알았다』며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꿋꿋하게살아온 김총재가 이제 그 빛을 보게 됐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김당선자의 당숙질인 김상배(金相培·84)씨는 『예로부터 하의도는 물에 연꽃이 떠있는 「연화부수(蓮花浮水)」 형국이라고 해서 나라를 위한 큰 인물이 날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며 『바로 김당선자를 두고 한 말일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회관에 모인 팔순 노인들은 김당선자의 유년시절을 회고하면서 『어릴 적에 명석하고 똑똑했던 김당선자가 결국 해냈구나』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김당선자와 하의초등학교 동창생인 박홍수(朴洪洙·75)씨는 『김당선자가 너무 총명한 나머지 칭찬이 자자해 친구들로부터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고 회고했다.

박씨는 당시 일본인 교장이 김당선자에게 「사해진명(四海振名) 솔하군중(率下群衆)」의 인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김당선자와 함께 서당에 다녔다는 김춘배(金春培·85)씨는 『김총재가 초등학교 3학년이던 12세 때 폭력을 일삼는 일본인 교장을 몰아내는 운동에 앞장섰다가 주재소에 끌려가는 등 곤욕을 치렀다』며 『어릴적부터 웅변이 뛰어나고 사람을 휘어잡는 뭔가가 있었다』고 전했다.

하의면 김예택(金禮澤·62)면장은 『김당선자는 94년 면사무소가 신축될 당시 직접 참석하지 못한 대신에 「향심무궁(鄕心無窮)」이란 친필 휘호를 써 내려보내주는 등 고향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남달랐다』고 회상했다.

잔칫상을 물리며 마을 사람들은 『이제 대통령이 되시겠지만 국내외 안팎으로 어려움이 많아 어떻게 이를 헤쳐나갈지 걱정』이라며 잠시 기쁨을 접어두고 앞날을 걱정하기도 했다.

『더 뭘 더 바라겠습니까. 휘청거리는 경제를 바로잡고 국민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주는 것 그 이상의 바람은 없습니다』

주민 김인섭(金仁燮·57)씨는 『재임기간에 꼭 통일을 이뤄 영원한 「통일대통령」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의도〓정승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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