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력 이대론 안된다]생산성 日의 절반…匠人이 없다

  • 입력 1997년 3월 13일 20시 10분


[이영이·박현진·이용재기자] 현대전자는 작년 유무선 전화기의 조립작업을 하도급업체에 떼어주었다. 자사 근로자들이 일일이 손으로 해야 하는 이 작업이 번거롭다며 꺼렸기 때문. 그러나 하도급회사엔 비숙련공이 대부분이라 3%대였던 불량률이 2,3배로 치솟았다. 본사 근로자들이 다시 손보느라 납기를 못맞추는 경우가 늘었다. 임금은 하도급업체 쪽이 월 30만∼40만원 싸지만 결국엔 추가비용이 더 든다. 경기도 송탄에서 액세서리를 생산, 수출하는 Y사 사원의 근속연수는 평균 2년에 불과하다. 어렵게 사원을 뽑아 훈련을 시켜보면 빨라야 6개월, 보통은 8개월이 돼야 숙련공 한사람 몫을 한다. 그러나 절반 정도가 1년 안에 그만둔다. 4년 이상 근속한 사원은 거의 없다. 판매나 유통 서비스업종에 자리가 나면 미련없이 떠난다. 『갈수록 임금은 올라가지만 직원들의 숙련도는 계속 떨어집니다. 한우물을 파서 장인(匠人)이 돼보겠다는 근로자는 자취를 감췄지요. 기업주들도 근속 2, 3년이 넘기 전에는 내 식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P사장) 수원에서 종업원 45명의 기계부품업체를 경영하는 H사장은 아침 7시에 출근, 퇴근시간인 저녁8시반까지 자리를 뜨지 못한다. 공장을 비우면 생산량이 뚝 떨어지기 때문. 중간관리자가 있지만 영(令)이 안선다. 자동화 설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사원들이 몇시간씩 방치해 생산이 중단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해외출장도 될수록 줄인다. 불가피한 출장은 명절이나 연휴때 간다. 『살만해질수록 근로자들의 자세는 해이해져 갑니다. 내년쯤엔 생산직에도 차등급여제를 도입해볼까 검토중입니다. 시간만 때우면 누구에게나 같은 돈을 주는 급여체계는 이제 싫습니다』(H사장) 96년 우리 가전3사의 근로자 1인당 컬러TV 생산대수는 하루(8시간 근무기준) 18대. 일본 마쓰시타전기(36대)의 딱 절반이다. 에어컨은 31대(샤프 58대), 컴퓨터는 13대(NEC 25대)로 거의 마찬가지. 『3, 4년 전까지만 해도 근로자들의 노력 덕에 국내 가전업체의 1인당 생산대수가 일본의 70%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최근엔 50%선으로 떨어진 겁니다. 그런데도 처우 복지 등에 대해선 선진국과만 비교하려 합니다』(S전자 L이사) 지난 87년부터 95년사이 우리나라 근로자의 임금상승률은 연평균 16.1%,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11.1%. 「생산성 적자」가 5%포인트였다. 같은 기간 외국의 연평균 임금상승률은 △일본 2.8% △미국 2.7% △싱가포르 9.4% △대만 10.4%였다. 미국과 일본은 생산성 증가율이 임금상승률을 웃돌았다. 싱가포르와 대만은 생산성 증가율이 임금상승률보다 낮았지만 「생산성 적자」가 각각 0.1%포인트와 2.0%포인트에 그쳤다.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의 金秀鳳(김수봉·51)과장은 『후배에게 기술을 가르치려해도 조금만 힘들면 배우려들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기계에서 압축공기나 물이 새고 있어도 잘 잠그질 않아요. 볼트가 바닥에 떨어지면 무조건 쓰레기통에 집어넣지요. 철판을 재단할 때 하나라도 더 뽑아낼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하는데…. 「우리회사」라는 생각이 별로 없어서 그러겠지요』(김과장) 『기계가 나쁘고 작업환경이 좋지않아 일 못한다는 것은 옛말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근로자의 생산성 문제지요. 생산성은 윗사람의 지시만으로는 안됩니다. 스스로도 문제점을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삼성그룹 N이사)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신인사제도를 도입하고 싶어도 근로자들의 반대에 부닥쳐 못하는 기업이 많습니다. 상호불신을 벗고 노사가 함께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로 양보하며 공동발전을 꾀해야 합니다. 또 근로자들도 고용불안시대에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업무능력을 향상시켜 자신의 몸값을 높여나가야 합니다』(安熙卓·안희탁 한국경영자총협회 연구위원) 한 대기업 노조간부를 잠깐 만났다. ―우리 경제가 어려운데는 근로자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라는 일을 다했는데 왜 우리에게 책임을 미루느냐고들 생각한다』 ―근로자 1인당 가전제품 생산량이 일본의 절반밖에 안되는데…. 『韓日(한일)간 노동생산성을 똑같이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일본 전자산업의 연륜은 우리의 3배다. 우리도 노력을 하겠지만 회사측도 숙련공 양성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한다』 ―제품의 마무리가 시원찮은 것도 역사가 짧기 때문인가. 『성의나 책임감에서 아직 일본을 못따라가는 것은 솔직히 인정한다. 현장에서 불량률이나 수출클레임이 늘어나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노동조합회의 등을 통해 개선노력을 하고 있다. 일부 조합원들은 미국이나 일본만큼 월급을 주면 못할 것도 없다고 하지만…』 늦었다고 벌써부터 체념할 필요는 없다. 이 노조와 같은 「개선노력」이 꺼져가는 노동 경쟁력을 되살리는 불씨가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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