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해결에도 기재부가 특효약?[용썰]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12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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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대통령실에서는 침묵 속에도 온갖 썰이 넘쳐납니다. 동아일보 대통령실팀 기자들이 함께 쓰는 디지털 전용 콘텐츠 [용썰]은 대통령실을 오가는 말의 팩트를 찾아 반 발짝 더 내디뎌 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위촉장을 수여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EBS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2022년 기준 0.78명이라는 한국의 합계출산율을 듣고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으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지난달 28일 통계청이 공개한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이 0.65명을 기록하면서 윌리엄스 교수가 다시 회자됐습니다. 더 악화된 한국의 합계출산율을 들으면 윌리엄스 교수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합니다.

추락 중인 합계출산율을 ‘1.0’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은 저출산 문제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꼽았습니다. 이에 발맞춰 지난해 나경원 전 부위원장 찍어내기 국면에서 반짝 주목받는데 그쳤던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가 실질적인 저출산 대응 컨트롤타워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직급 격상과 조직 확대 개편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불도저’ 별명이 붙는 기획재정부 출신 주형환 부위원장의 저고위 체제가 실질적 저출산 대책을 발표하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도 있습니다.

●尹, 저고위에 힘 싣기…격상 및 확대 개편

주 부위원장은 지난달 12일 위촉됐습니다. 이후 같은 달 20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저고위 부위원장은 비상근직에서 상근직으로 바꾸고, 직급과 예우도 상향시키기로 했다”며 “국무회의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국정을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윤 대통령이 저고위에 힘을 실어주면서, 기존 장관급·비상근직인 저고위 부위원장의 부총리급·상근직으로 격상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또 저고위 사무국도 사무처로 확대 개편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현재 저고위 사무국장은 국장급(2급)이 맡고 있는데, 사무처장은 실장급(1급)으로 올리면서 기획재정부 출신이 발탁될 방침으로 알려졌습니다.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12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사무국장(2급)을 사무처장(1급)으로 올리고, 아래에 3개 국을 두는 확대 개편 방안이 유력하다”며 “23명인 저고위 직원 정원 확대 등을 놓고 행정안전부와 막판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저고위가 기존 ‘1국 5과’에서 ‘1처 3국’으로 확대 개편되는 것입니다.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가운데)이 2월 2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미래세대자문단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 저고위 사무처장에 기재부 출신 거론

눈여겨볼 대목은 저고위 실무를 총괄하는 사무처장에 기재부 출신이 발탁되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것입니다. 저고위 사무처장에는 기재부 내에서 ‘예산통’으로 알려진 최한경 재정관리국장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행정고시 39회 출신인 최 국장은 기재부 예산총괄과장·예산정책과장 등을 거쳤습니다. 저고위 실무를 총괄하는 사무처장에 경제 관료를 배치하는 건 저출산 대응 컨트롤타워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임호근 저고위 사무국장은 보건복지부 출신입니다. 통상 저고위 사무국장은 복지부 출신이 맡아왔습니다. 그런데 기재부 출신을 투입하겠다는 건 “저출산 정책을 종합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예산·세제 전문가가 와야 한다”는 의중이 깔린 것으로 보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지냈던 주 부위원장도 행정고시 26회로 공직에 입문해 기재부 1차관·차관보,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등을 역임한 정통 경제 관료 출신입니다.

저고위는 지난달 주 부위원장 위촉 이후 저출산 정책에 대한 재평가 및 재구조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저고위 관계자는 “200여 개가 넘는 각종 저출산 정책에 대해서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있다”며 “세부적인 분석 이후 저출산 정책 재구조화 기준을 만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기재부와도 협의해 예산 차원에서도 저출산 정책이 재구조화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저고위 사무처장에 기재부 출신이 가는 것을 두고는 “또 기재부 출신이냐”는 시선도 있습니다. 주 부위원장은 물론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도 기재부 출신입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김대기 전 대통령비서실장,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방기선 국무조정실장 등 기재부 출신 인사들이 요직에 발탁돼 ‘기재부 전성시대’라는 얘기까지 나왔었습니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출신인 탓에 검찰 출신 참모들이 집중적인 견제를 받았던 것과 달리, 기재부 출신은 특별한 견제없이 소리소문없이 요직을 차지했다는 평가가 윤석열 정부 인사를 바라보는 서초동 주변의 평가이기도 합니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지난 2월 5일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부영태평빌딩에서 2021년 이후 출산한 임직원에게 출산 장려금을 전달하고 있다. 부영그룹 제공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지난 2월 5일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부영태평빌딩에서 2021년 이후 출산한 임직원에게 출산 장려금을 전달하고 있다. 부영그룹 제공


● 부영 1억 출산지원금에 전 국민적 관심

결국 주 부위원장 체제 저고위가 “또 기재부 출신이냐”는 지적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정책 수요자인 2030세대의 환영을 받고, 국가존망의 위기가 달린 저출산 문제를 타개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최근 부영그룹이 직원들의 출산 장려를 위해 2021년 1월 이후 자녀를 출산한 직원 가족에게 자녀 1인당 출산지원금 1억 원씩을 주기로 해 전 국민적인 관심을 받았습니다. 부영그룹이 기업 이미지 제고를 의도한 것이라면 제대로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강원 강릉시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썬크루즈 호텔&리조트도 12일 직원 2명에게 1인당 5000만 원씩의 출산지원금을 전달해 화제가 됐습니다. 삼성을 비롯한 주요 대기업에서도 출산지원금 상향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도 이 같은 부영그룹의 1억 원 출산지원금에 ‘비과세’ 혜택으로 화답했습니다. 정부의 화답은 부영그룹과 같은 거액의 출산지원금이 민간기업으로 확산되면 저출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를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윤석열 정부는 저출산 대책에서 직접적인 현금성 지원 확대는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입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대출금을 지원하는 ‘헝가리식 모델’은 윤 대통령의 저출산 정책 철학과는 거리가 있다”며 “돈을 쓸 수는 있지만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향”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헝가리식 모델’은 윤석열 정부에서 첫 저고위 부위원장으로 임명됐던 나경원 전 의원이 지난해 1월 언급하기도 했었습니다. 당시에도 2030세대 사이에서는 상당한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안상훈 대통령사회수석비서관이 직접 브리핑에 나서 “윤석열 정부의 관련 정책 기조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후 나 전 의원은 부위원장에서 해촉됐습니다. 4·10 총선에 서울 동작을에 출사표를 던진 나 전 의원은 여전히 ‘헝가리식 모델’을 저출산 대책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3월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차 사회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이주호 부총리의 발언을 듣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정부가 저출산 대책에 현금성 지원을 늘리는 데 조심스러운 건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려는 이유라는 시선도 있습니다. 전임 문재인 정부가 과도한 적자 국채를 발행했다는 지적과 그에 따른 후유증이 있었고, 나라 곳간도 넉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민간기업의 1억 원 지원이나 대출금 탕감과 연계된 정책에 뜨거운 국민의 관심을 보면 저출산 정책의 수요자인 2030세대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을 더 고심해야할 것 같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신생아 특례대출과 준비 중인 신생아 특별공급에 대한 관심도 이를 방증합니다. 그간 정부에서 들인 저출산 대책 예산이 적재적소에, 정책 수요자에게 온전히 돌아갔는지에 대한 점검이 먼저인 거 같습니다. 물론 국가돌봄체계 강화, ‘워라블’(일과 삶의 혼합·work and life blending)을 중시한 획기적 정책이나 육아휴직을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는 대책, 지나친 사회적 경쟁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들도 정책 수요자들은 원하고 있습니다.

노동, 주택, 교육 등 온갖 한국 사회의 문제가 집약된 저출산 문제를 주 부위원장이 이끄는 저고위 확대 개편만으로 드라마틱하게 해결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또 기재부 출신이냐”는 지적으로 시작하더라도 “기재부 출신이 맡으니 그나마 달라졌다”는 평가가 남길 바랍니다. 온 국가가 머리를 맞대도 해결하기 힘든 저출산 문제가 개선될 유의미한 흐름을 만드는 것조차 어려운 게 지금의 현실이니까요.

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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