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뒤에 또 펼쳐질 ‘번갯불에 콩 볶는 쇼’ [한상준의 정치 인사이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10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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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를 누비는 기자들이 총선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걸 피부로 느끼는 몇 장면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전화 통화다. 그토록 전화를 안받던 취재원들이 신호음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을 때 느낀다. 아, 공천이 얼마 안 남았구나!

할 말이 없어서, 불편해서, 아는 게 없어서, 말 하기 싫어서 등등 저마다의 이유로 기자들의 전화를 피하던 국회의원들이 공천을 앞두고는 180도 달라진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뭐가 궁금해요?”

질문을 마치고 통화를 끊으려는 찰나에, 전화를 받은 진짜 이유가 드러난다. “그런데 요새 뭐 들은 거 없어요?” 공천 관련한 작은 정보라도 궁금하다는 의미다.

이 무렵이 되면, 각 정당이 공통적으로 띄우는 조직이 있다. 인재영입위원회다. 총선을 앞두고 “우리가 이처럼 참신한 새 인물을 영입했습니다!”라고 홍보하기 위해 인재 물색에 나서는 조직이다. 인재영입위원회가 출범하고 나면, 신규 인사 영입 발표가 이어진다. 경제 전문가, 워킹맘, 청년 정치인, IT(정보통신) 전문가, 벤처 기업가 등등…. 아예 ‘인재 영입 1호, 2호, 3호’ 식으로 릴레이 영입 발표에 나서기도 한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왼쪽 사진)과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오른쪽 사진)은 인재 영입 경쟁을 벌였다. 동아일보 DB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왼쪽 사진)과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오른쪽 사진)은 인재 영입 경쟁을 벌였다. 동아일보 DB

문제는 그 다음이다. 영입 축하 꽃다발이 시들기도 전, 일부 영입 인사들의 문제점이 속속 드러난다. 논문 표절, 부적절한 발언, 재산 문제, 범죄 전과…. 정치권의 새 인물이라며 영입한 인사들의 문제적 과거가 드러날 때 마다 정당들이 내놓은 해명은 똑같다. “다소 급하게 영입 작업을 진행하느라 제대로 된 검증 작업을 하지 못했다.”

매번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아마 정상적인 조직은 이런 결론을 내릴 것이다. “닥쳐서 급하게 준비하지 말고, 미리 미리 준비하자.” 총선은 정확히 4년마다 돌아온다. 총선이라는 ‘D-데이’에 맞춰 충분히 준비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각 정당이 정말 참신한 인물들을 발굴해 정치권을 제대로 바꿔보겠다는 목적이라면 지금쯤 인재 영입을 준비해야만 한다. 22대 총선은 2024년 4월 10일 치러지고, 총선 공천은 그보다 앞선 2월 무렵이면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등 여야는 현재 준비에 나설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왜일까.


첫 번째 이유는 인재 영입의 진짜 목적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과거 한 정당의 공천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던 정치인의 말이다.

“국회의원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이 높기 때문에 총선이 임박하면 ‘얼마나 새로운 사람을 공천했나’에 관심이 쏠린다. 결국 총선이 임박한 시점에서 ‘깜짝 인사’를 많이 앞세우는 게 총선 득표에 도움이 된다. 1년 전부터 영입해 놓으면 정작 총선을 앞둔 시점에는 새 인물이 아닌 ‘헌 인물’이 되어 버린다.”

새 피 수혈을 통한 정치 문화 개선이 목적이 아니라, 총선 득표전에 도움이 되는 ‘깜짝 쇼’가 진짜 목적이라는 의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엊그제까지 A 정당의 입당을 타진했던 인사가 하루 아침에 B 정당에 입당하는 일도 벌어진다.

두 번째 이유는 ‘고인 물’들의 견제다. 총선은 300개(21대 국회 기준)의 의석을 두고 현역 의원들과 원외(院外) 인사들이 뒤섞여 벌이는 싸움이다. 지금 전국 각 지역구에서는 이미 싸움이 시작됐다. 이런 상황에서 현역 의원을 포함한 출마 준비자들이 경쟁자가 늘어나는 걸 달가워 할리 없다. “내 지역구는 건드리지 말라”는 현역 의원들의 반발 때문에 매번 총선 때마다 선거구 획정과 선거제도 개편이 지각 확정되는 것과 같은 이유다.

영입 인사로 정치권에 발을 디뎌 당선에 성공한 한 현역 의원의 경험.

“입당 환영식이 끝나고 당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그래서 어디로 출마할거냐’는 거였다. 쉽게 말해 ‘내가 출마를 준비 중인 지역구로는 오지 말라’는 의미다. 게다가 현실 정치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데, 정작 내가 어디로 가야 하고 뭘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도 않더라. 그러니 영입 인사라 해도 전략공천을 받거나, 확실한 연고가 있는 지역이 있는 게 아니라면 정작 공천조차 받지 못하고 잊혀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결국 변화를 거부하고, 기득권을 놓치기 싫어하는 정치권의 구태가 바로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인재 영입 쇼’를 만들어 내는 셈이다. 아마 내년 총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총선까지 1년 3개월여가 남은 시점에서 각 정당의 관심은 오로지 “누가 공천을 행사할 것인가”에만 쏠려 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새 인물의 투입을 준비하는 움직임은 찾아볼 수가 없다. 아마 1년 뒤에는 또 한 번 번갯불에 콩 볶듯이 사람을 찾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한상준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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