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윤석열 캠프 수천명 줄대기… 지금 플럼북 만들어야 낙하산 막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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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인사, ‘한국판 플럼북’으로] 새 정부, 새 인사를 위한 제언〈하〉
대선뒤 보은 인사 되풀이 우려
정권초 ‘낙하산’ 정권말엔 ‘알박기’

지난해 11월 강원 원주시에 있는 대한석탄공사에는 원경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사장직에 올랐다. 2019년 퇴임 때까지 30년간 경찰에만 몸담았던 인물이다. 같은 해 2월 더불어민주당 당직자 출신의 김경수 씨도 상임감사로 취임했다.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각각 강원 홍천-횡성-영월-평창, 강릉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친여 인사라는 점이다. 석탄 등 자원 분야에서 쌓은 이력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도 같다. 이들은 각각 3년, 2년의 임기를 보장받아 22대 총선이 있는 2024년 즈음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다.

정권 창출에 따른 ‘전리품 인사’는 왜곡된 대통령의 인사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은 인사지침서 ‘플럼북(Plum Book)’에 기반해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직책이 정해져 있는 반면 한국은 대통령이 정할 수 있는 자리의 범위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청와대와 여권 핵심들은 ‘대통령의 권한’을 앞세워 정부와 공공기관 주요 자리를 ‘내 사람’을 제멋대로 내리꽂을 수 있는 사유물처럼 여긴다. 대선 과정에서 도움을 준 인사들이 새 정부 출범 후 앞다퉈 ‘청구서’를 들이밀기 전에 ‘한국판 플럼북’으로 대통령의 인사권이 미치는 범위에 대해 명확한 경계선을 그어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정권 초 ‘낙하산’-정권 말 ‘알박기’ 악순환
정권 초반에는 “국정 운영을 뒷받침해야 한다”라는 명분으로 대선 공신(功臣)을 위한 ‘전리품 인사’가 곳곳에 수두룩하다. 이 같은 인사는 외부의 이목을 받는 주요 공공기관장보다 감사직에서 더 심각하다.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실이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 자료를 분석한 결과 35개 공기업의 감사 중 ‘낙하산’으로 추정되는 곳은 23곳에 이른다. 인사혁신처 전직 공무원은 “감사직은 억대 연봉의 ‘꿀보직’으로 꼽히지만 누굴 보내도 사고가 날 위험이 적다는 판단에 정치권 인사에게 보은하는 용도로 자주 쓰인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관행은 정권 말기까지 이어진다. 차기 정부에 줄 부담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사람’을 심는 것이다. 추 의원실에 따르면 공기업 35곳 중 26곳(74%)의 기관장은 임기가 2024년까지 이어진다. 보장된 임기대로라면 3월 누가 새 대통령으로 선출되든 임기의 절반 가까이를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기관장들과 함께하게 된다. 과거에는 임기가 남은 전 정부 인사들에게 ‘사퇴 종용’이 공공연하게 이뤄졌지만 새 정부에선 ‘환경부 블랙리스트’ 판결 여파로 이런 ‘편법’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 대통령 인사권 범위 명확히 하는 게 급선무
전문가들은 공직 사유화를 막고 인재의 고른 등용을 위해 대통령 인사권의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정석적 해법’을 제안한다. ‘한국판 플럼북’의 도입이다. 미국에서처럼 우선 대통령의 인사권이 미치는 자리부터 정한 뒤 청와대 인사 시스템과 공공기관장 공모제 등 관련 인사제도를 현실에 맞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철저히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의 고유 인사권은 보장하되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직책을 제외한 인사에는 청와대가 일절 개입할 수 없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직 후보자에 대한 인사 추천과 검증을 담당할 독립기구를 설립하자는 얘기다.

일각에는 국정과제와 관련된 핵심 공공기관에 한해 대통령의 책임 인사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인사혁신처 전직 고위공무원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에 대통령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임용하면 새 정부가 주택정책을 펼 수 있겠느냐”며 “국정철학을 공유해야 할 자리는 공모제를 통하지 않고 대통령이 직접 임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 ‘한국판 플럼북’ 약속, 더는 미룰 수 없어
현재 여야 유력 후보들의 캠프는 5월 출범하는 새 정부에서의 자리를 기대하면서 줄을 대는 인사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경우 직속 위원회 13개를 포함한 선대위 전체 위원회가 55개에 이른다. 현재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방선거 출마 등을 위한 ‘선거용 스펙’으로 캠프 경력만 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힘도 ‘매머드급’ 선거조직을 대폭 개편했지만 여전히 상근 실무진 규모만 400∼500명 수준이다. 각종 위원회나 비상근직으로 활동하는 이들은 수천 명에 달해 집계조차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당선자가 결정된 뒤 전리품 인사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여야 후보 중 누가 당선될지 모르는 지금이 인사제도를 전면 개편할 적기”라며 “대선 전에 고치지 않으면 결국 인사 참사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이재명#윤석열#플럼북#낙하산#알박기#인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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