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에게 알고리즘 공부하라, 김남국은 왜?

  • 주간동아
  • 입력 2021년 5월 15일 16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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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野說] ‘우매함의 봉우리’ 빠졌다면 차라리 멈춰라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이
4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주간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조영철 기자]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이 4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주간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조영철 기자]
“선정적으로 선동하고 반대할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에 대해 공부하고, 알고리즘이 가진 본질적인 위험성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제도적인 고민을 함께했으면 좋겠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5월 9일 들은 말이다. 컴퓨터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 ‘V3’를 개발하고 관련 회사를 운영한 안 대표에게 이런 말을 한 사람은 누구일까. 놀랍게도 IT(정보기술) 분야 경력이 없는 더불어민주당(민주당) 김남국 의원이다.

관련 분야에 종사해야만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공부할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수십 년간 음악평론을 한 강헌 경기문화재단 대표도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학문 명리학을 공부해 베스트셀러 ‘명리’를 출간했고 관련 강의도 하고 있다. 김 의원이 알고리즘 전문가가 되지 말라는 법 역시 없다.

‘깨달음의 비탈길’ 넘어야 ‘지속가능성의 고원’ 도착

김 의원은 최근 알고리즘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5월 7일 페이스북에 “오랜만에 새벽 공부를 한다”며 새벽 4시를 알리는 시계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그가 전날 대표 발의한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일명 ‘포털 알고리즘 투명화법’)은 알고리즘 공부의 결과물이다.

이 법안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9명으로 구성된 뉴스포털이용자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3명은 국회의장이 국회 교섭단체 대표의원들과 협의해 추천하고, 나머지

6명은 대통령이 지정한 단체에서 추천한다. 김 의원은 5월

6일 이 법률안에 대해 “최근 보도에 따르면 특정 성향의 언론 기사가 과도하게 노출되는 등 알고리즘 편향성 문제가 지적된다”며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으로 뉴스포털이용자위원회를 설치한 뒤 기사 배열 알고리즘의 주요 구성 요소 공개 요구 또는 검증에 관한 업무 등을 담당하게 해 인터넷 뉴스 서비스의 공공성, 공정성, 투명성을 확보하려 한다”고 제안 이유를 설명했다. 지지자들이 정부 비판 기사로 받는 상처를 줄이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이렇게 좋은 법안이 왜 이제야 발의됐을까. 대다수 사람은 인터넷 포털을 통해 정치 분야 기사를 읽는다. 정권 초기 해당 법안이 있었다면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현 정부를 찬양하는 기사에 둘러싸여 행복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우스갯소리를 섞어 분석하면 법안이 늦어진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대표 발의자인 김 의원이 대통령 임기 3년이 지난 지난해 국회의원이 됐다. 둘째, 그가 알고리즘 공부를 최근에야 시작했다.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짧은 기간 알고리즘을 공부한 사람이 관련 분야 전문가에게 “공부 좀 하라”고 일갈하는 게 가능할까. 데이비드 더닝 미국 코넬대 교수와 대학원생 저스틴 크루거는 유사 현상을 설명하는 ‘더닝 크루거 효과’ 이론을 발표했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근거 없는 자신감에 휩싸여 잘못된 행동을 한다는 내용이다. 부정적 결과가 나타나더라도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증명한 셈이다.

테니스를 막 배운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총알같이 나가는 공을 보면서 자신감이 샘솟을 것이다. ‘테니스 선수를 해도 되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단계가 더닝 크루거 효과의 1단계인 ‘우매함의 봉우리’다.

다른 이들과 시합하며 생각이 바뀐다. 세상에 고수는 많고 내가 친 공은 생각대로 나가지 않는다. “아, 테니스라는 게 이렇게 어렵구나”라며 한탄도 절로 나올 것이다. 이 단계가 2단계 ‘절망의 계곡’이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테니스를 배운다면 그 나름 요령을 터득하게 되는데 이는 3단계 ‘깨달음의 비탈길’이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정진한다면 4단계 ‘지속가능성의 고원’에 도달할 수 있다. 2~4단계에 속하는 이들이 1단계에 들어선 이들과 다른 점은 자신의 한계를 성찰하고 다른 이를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남국 의원이 5월 7일 페이스북에 공부 인증 사진을 올렸다. [김남국 의원 페이스북]
김남국 의원이 5월 7일 페이스북에 공부 인증 사진을 올렸다. [김남국 의원 페이스북]
반복되는 전문가 비판

김 의원이 새벽 4시에 일어나 알고리즘을 공부한 사실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그의 공부가 1단계, 즉 우매함의 봉우리에 도달하는 데 그쳤다고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독재정권에서나 가능할 ‘포털 알고리즘 투명화법’에 이의를 제기한 안 대표를 향해 “공부하라”고 비난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본다.

김 의원이 우매함의 봉우리에 빠진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대검찰청 국정감사(국감) 다음 날인 지난해 10월 23일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법사위원으로서 국감을 하면서 참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석열 당시 총장이) 공부를 하나도 안 해왔다”고 말했다. 변호사 생활을 수년밖에 하지 않은 김 의원이 1994년부터 검사 일을 해 최고직에 오른 윤 전 총장에게 공부를 언급한 사실은 특이했다. 김 의원의 국감 질의 과정 중 참석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진 일도 있었는데, 김 의원은 이들 반응에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지난해 7월 30일 국회에서 ‘저는 임차인입니다’ 연설을 하며 정부가 추진 중인 임대차 3법이 전세 가격을 폭등시킬 것이라고 비판했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김 의원은 사흘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세 가격이 폭등할 것이라는 말은 전제부터 잘못됐다”며 “가격은 주택 가격, 임대주택의 수요와 공급, 물가상승률, 기타 경제 상황에 의해 결정된다”고 일갈했다.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 박사 출신인 윤 의원이 경제 분야 비전문가로부터 가격에 대한 강의를 듣는 광경은 이상했다. 법 시행 뒤 전세대란이 일어났지만 김 의원은 이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우매함의 봉우리에 빠졌기 때문은 아닐까.

김 의원에게는 3년의 임기가 남았다. 김 의원이, 그리고 또 다른 김남국들이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떤 법안을 발의할지 생각하면 두려움이 앞선다. 법은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한번 만들어지면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 의원에게 충고한다.
“공부하지 않아도 괜찮다. 가만히 있는 게 애국일 때도 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89호에 실렸습니다]

서민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교실 교수 bbbenj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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