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 충돌’ 첫 재판…황교안 “저는 죄인…권력폭주 막기 위한 정당방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21일 20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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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죄인입니다. 하지만 제 죄는 이 법정이 정죄(定罪)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21일 오후 서울남부지법 4층의 형사대법정. 지난해 4월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건으로 기소된 황교안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전 대표가 손바닥만한 크기의 노란 노트를 들고 이렇게 모두 진술을 시작했다.

검사 출신의 황 전 대표는 잠시 후배 검사들을 응시하다가 “국민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 국민께서 기회를 주셨는데 이 정권의 폭주를 막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패스트트랙에 상정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안과 선거법 개정안은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왜곡하는 법안이었다. 결과가 뻔한 악법의 통과를 방치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배임이고, 국가에 대한 배신”이라고 했다. “권력의 폭주와 불법을 막기 위한 정당방위가 어떻게 불법이 되느냐”고도 했다.
황 전 대표, 나경원 전 원내대표를 포함한 전현직 의원 23명, 당직자 3명 등 27명은 이날 서울남부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이환승) 심리로 진행된 첫 공판에 출석했다.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 이후 약 19개월 만에, 올 1월 국회법 위반과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후 8개월 만에 처음으로 법정에 선 것이다.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영상자료가 방대하고 관련자들이 많아 4차례에 걸친 공판준비기일 끝에 첫 공판이 열리게 됐다.

검찰은 “대화와 토론이 발휘되어야 할 국회 회의장에서 빈번한 여야간 폭력사태를 근절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향후 이러한 폭력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재판부의 엄정한 판단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충돌 사건 당시 한국당 지도부였던 황 전 대표와 나 전 원내대표 측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나 전 원내대표는 “법에서 정한 330일의 숙려기간도 충분히 지켜지지 않았다. 소수의견이 묵살되는 현실에서 제1야당이 가만히 있는 것은 저희의 직무를 포기하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오전 10시와 오후 2시, 오후 4시 등 3차례로 나눠서 진행됐다. 황 전 대표는 오후 2시 재판에, 나 전 원내대표는 오전 10시 재판에 참석했다. 황 전 대표는 법정에 들어가기 전에 기자들에게 “총선 뒤 불면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나 전 원내대표는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헌법정신에 입각한 주장과 입장을 설명하겠다. 안타깝고 참담하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와 나 전 원내대표는 재판과정에서 “동료 의원들을 처벌하지 말아 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황 전 대표는 “법원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면 당 대표였던 나로 충분하다. 불의와 맞서겠지만 책임져야 한다면 명예롭게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나 전 원내대표도 “지난해 4월 벌어진 모든 일의 의사결정권은 당시 원내대표였던 제게 있다. 그로 인한 책임도 모두 내게 있다”고 했다.

피고인 측은 “공소장에는 폭력 행위의 대상이 되는 개별 공무원이 누구인지, 어떤 폭행과 협박이 가해졌는지가 기재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기존 판례에서 폭행, 방해 등을 폭 넓게 인정한 바가 있다. 피고인들이 여러 방식으로 폭행과 협박을 한 내용을 적시했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채이배 전 의원을 감금한 혐의로 기소된 관련자의 증인신문을 먼저 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나 전 원내대표 등의 다음 공판은 11월 16일에 열린다. 재판부는 해외 출장을 이유로 재판에 불참한 민경욱 전 의원에 대한 구인장 발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조응형기자 yesb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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