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2일 ‘2020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공정’이란 단어를 27번 언급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2019년 예산안’ 시정연설 때에 비해 같은 단어를 약 3배 발언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공정’이 바탕이 되어야 ‘혁신’도 있고 ‘포용’도 있고 ‘평화’도 있을 수 있다”며 ‘공정’을 이날 시정연설의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국회에서 취임 후 네 번째 시정연설을 갖고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이 혁신과 포용, 공정과 평화까지 ‘네 가지 힘’을 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정부는 올해 예산(469조6000억원)보다 9.3%(43조900억원) 증가한 513조5000억원을 내년도 예산안으로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다.
문 대통령은 “이제 우리 정부 남은 2년 반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라며 “혁신적이고, 포용적이고, 공정하고, 평화적인 경제로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도 예산안과 세법개정안에는 더 활력있는 경제를 위한 ‘혁신’, 더 따뜻한 사회를 위한 ‘포용’, 더 정의로운 나라를 위한 ‘공정’, 더 밝은 미래를 위한 ‘평화’, 네 가지 목표가 담겨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내년도 예산안이 어떻게 이 ‘네 가지 힘’을 키울 수 있는지 국민과 여야의원들을 향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은 ‘국민’을 33번, ‘국회’를 18번, ‘경제’를 29번 언급한 데 이어 혁신·포용·공정·평화라는 키워드를 각각 20번, 14번, 27번, 11번 발언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2019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도 ‘포용국가’와 ‘평화의 한반도’, ‘생활적폐 청산’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제시함으로써 이 네 가지 단어를 적지 않게 언급한 바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은 ‘혁신’을 12번, ‘포용’을 18번, ‘공정’을 10번, ‘평화’를 8번 말했다.
그럼에도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지난해 연설보다 이번 연설에서 ‘공정’에 대한 언급이 10번에서 27번으로 3배 가량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여기에 혁신과 포용, 평화까지 모두 공정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공정’이 바탕이 되어야 ‘혁신’도 있고 ‘포용’도 있고 ‘평화’도 있을 수 있다”며 “경제뿐 아니라 사회·교육·문화 전반에서 ‘공정’이 새롭게 구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설에서 유난히 ‘공정’의 가치가 강조된 것은 문 대통령이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를 크게 의식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최근 사회 곳곳에선 조 전 장관 일가(一家)를 보며 입시·취업 등에 있어 ‘사회적 기득권의 대물림’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는 문 대통령이 언급해온 ‘공정의 가치’가 무엇이냐는 평가로까지 이어졌다. 문 대통령이 외쳤던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로움”이 결국은 조 전 장관이냐는 비판이 나왔고 지지율도 하락했다.
결국 이날 연설에서 ‘공정’을 여러 차례 언급한 것은 문 대통령이 ‘공정의 가치’를 다시금 제대로 세우겠다는 의지를 국민 앞에 다짐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문 대통령이 이번 연설을 통해 북한에 ‘평화를 위한 호응’을 촉구한 점도 눈에 띄었다.
이달 초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있던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 결렬 이후에도 문 대통령은 특별한 대북메시지를 내지 않아 왔다. 더 늦기 전에 경색된 한반도 상황의 출구를 찾으려는 움직임으로 읽힌다.
문 대통령은 이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면 우리 경제는 새로운 기회를 맞게 될 것이다. 남북 간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경제·문화·인적교류를 더욱 확대하는 등 한반도 평화와 경제협력이 선순환하는 ‘평화경제’ 기반 구축에도 힘쓰겠다”며 “북한의 밝은 미래도 그 토대 위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북한의 호응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번 연설에서 ‘소득주도성장’이란 단어가 들어가지 않은 점도 주목됐다. 문 대통령은 2017년 6월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위해 처음 시정연설을 한 자리에선 소득주도성장이란 단어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후 이어진 ‘2018년도 예산안’ 시정연설과 ‘2019년도 예산안’ 시정연설 땐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소득주도성장은 ‘혁신성장’, ‘공정경제’와 함께 현 정부 3대 경제정책으로 꼽힌다. 이는 대기업의 성장으로 인한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근로자의 소득을 높여 소비와 투자를 활성화시킴으로써 경제활력을 꾀한다는 정책이다.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로시간 등이 상징적 정책으로 꼽힌다.
청와대는 최근 내년부터 ‘50인 이상 300인 미만’으로 확대되는 주 52시간제 시행 확대를 일정기간 보류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지난 20일 춘추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300인 미만 사업장의 주 52시간제 시행을 보완입법 또는 계도기간 부여와 같은 행정조치로 보완하겠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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