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회견 끝나자마자… 김명수 이메일 맞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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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現 사법수장 ‘행정권 남용 의혹’ 정면충돌

착잡한 양승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 거래’
 의혹을 부인한 뒤 착잡한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그는 “대법원이나 하급심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성남=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착잡한 양승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 거래’ 의혹을 부인한 뒤 착잡한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그는 “대법원이나 하급심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성남=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 발표 일주일 만에 기자회견을 열어 ‘재판 거래’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전날 김명수 대법원장은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중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들에 대해 “참혹하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또 김 대법원장은 양 전 대법원장의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전국 법관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맞불을 질렀다. 김 대법원장은 “우리에게는 제 뼈와 살을 도려내야 하는 긴 고통의 시간이 예정돼 있다”며 강경한 대응 방침을 내비쳤다.

○ 양승태 “죄송”…‘재판 거래’ 부인

양 전 대법원장은 1일 오후 2시 경기 성남시 시흥동 자택 부근 놀이터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착잡한 표정으로 잠시 허공을 바라본 뒤 입을 연 그는 “재판을 흥정거리로 삼아서 거래를 하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며 대법원이나 하급심 재판에 관여한 일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대법원의 재판은 순수하고 신성한 것이다. 함부로 폄하하는 것은 견딜 수가 없다”며 “대법원 재판의 신뢰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 한 번도 대법원 재판을 의심받게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이 추진한 상고법원 도입에 비판적인 법관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도 부인했다.

30분가량 이어진 기자회견 초반 그는 “법원행정처의 부적절한 일이 사실이라면 그것을 막지 못한 책임이 있다. 국민께 죄송하고 그로 인해 고통을 받은 분들이 있다면 사과를 드린다”고 밝혔다.

○ 양승태 “‘재판 잘못’ 견강부회”

양 전 대법원장은 김 대법원장 취임 후 벌어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2, 3차 조사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기자들이 특별조사단의 조사 요구에 불응한 이유를 묻자 “(특별조사단이) 법원행정처 PC를 남의 일기장 보듯이 완전히 뒤지고 1년 넘게 400명가량을 조사했다고 한다”며 “그런데도 사안을 밝히지 못했으면 그 이상 뭐가 밝혀지겠나”라고 비판했다.

또 특별조사단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근거로 제시한 법원행정처 문건 410건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은 “문건 작성한 사람과 읽는 사람은 의미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가 ‘법원행정처 문건을 모른다는 거냐’고 재차 묻자 “언론사 사장이 질문하신 분 컴퓨터에 뭐가 들어있는지 다 알 수 있나”라고 쏘아붙였다.

양 전 대법원장은 또 ‘대법원 판결로 고속철도(KTX)에서 해고된 승무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는 기자 질문에 “어떤 재판이건 법관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결론을 낸 것을 자꾸 견강부회해 잘못됐다고 하는 것은, 나라를 위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 김명수 “충격…부끄러워”

김 대법원장은 이날 오후 3시 30분 전국 법관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는 특별조사단 조사 결과에 대해 “수많은 법관이 지켜온 자긍심과 국민이 사법부에 보내준 신뢰가 함께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충격이었다”며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었다는 이유로 사찰과 통제의 대상이 됐던 법관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부당한 재판 개입과 비판적 판사에 대한 불이익이 없었다는 양 전 대법원장의 기자회견을 사실상 정면으로 맞받아친 것이다.

이어 김 대법원장은 “우리가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법관으로서의 자존심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며 “수치심에 무너지지 말고, 우리의 양심을 동력으로 삼아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오랜 기간 굳어진 잘못된 관행과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대법원의 대응은 점차 강경해지는 분위기다. 특별조사단장인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이날 출근길에 “법리 구성을 달리하거나, 깊이 있게 검토하거나, 새로운 사실이 추가되면 (형사 조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날 의정부지법 단독판사들은 회의를 열고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대해 성역 없는 엄정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의결했다.

전주영 aimhigh@donga.com·김윤수 기자
#김명수#양승태#사법행정권 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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