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의 대외 비밀접촉 단골무대… 김정남-정철도 자주 찾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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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美 싱가포르 핵담판]싱가포르, 北엔 인연 깊은 국가


한 달 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곳. 서울의 약 1.2배의 면적에 560만여 명이 사는 도시국가. 1965년 독립 이후 리콴유 전 총리가 장기 집권하며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룬 곳. 그리고 완벽한 치안을 자랑하는 경찰국가. 6월 12일 사상 처음으로 북-미 정상이 마주 앉게 될 싱가포르에 대한 설명이다.

아시아의 대표적인 금융·교통 허브로 꼽히는 싱가포르는 서방 세계와 친숙한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북한에도 매우 익숙한 곳이다. 북한은 일찌감치 싱가포르와 수교를 맺고 다양한 인적·물적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역사적인 핵 담판의 장소를 싱가포르로 하자는 미국 측 제안을 받아들인 배경이기도 하다.

○ 北 비밀 접촉의 단골 무대, 싱가포르

2009년 10월,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은 극비리에 싱가포르행 비행기를 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그가 싱가포르에서 만난 인사는 김양건 당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2015년 사망). 임 전 장관은 훗날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양해각서 초안까지 작성했다”고 털어놨다.

‘싱가포르 비밀 접촉’은 2000년에도 있었다. 1차 남북 정상회담을 물밑에서 조율했던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6·15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북측 특사 송호경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싱가포르, (중국) 상하이 등에서 수차례 만났다”고 밝혔다.

북한이 싱가포르에서 우리 측 인사들만 만난 것은 아니다. 2008년 당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만나 북핵 검증의 최종 조율 담판을 벌인 곳도 싱가포르였다. 6월 김정은의 싱가포르행에 동행할 것이 확실시되는 리용호 외무상도 2015년 싱가포르에서 미국의 전직 관료, 전문가들을 만난 바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으로서는 싱가포르가 중국 다음으로 익숙한 국가일 것”이라며 “처음 가본 국가보다 의전, 경호 등을 준비하기 쉽다는 점도 북한이 싱가포르에 합의한 이유”라고 말했다.

○ 주요 교역 대상이자 北 외화벌이 창구 역할도


김씨 일가도 여러 차례 싱가포르를 찾았다.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는 2012년 치료를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했고, 암살된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도 이곳을 자주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1년에는 김정은의 형 김정철이 싱가포르에서 열린 에릭 클랩턴의 공연장을 찾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북한은 우리보다도 싱가포르와의 외교 관계를 먼저 맺었다. 북한은 한국보다 2년 앞선 1968년에 주(駐)싱가포르 통상대표부를 설치했고, 1975년 정식 수교를 체결했다.

자연히 싱가포르는 북한의 대표적인 교역 창구 역할을 해왔다. KOTRA에 따르면 2016년 싱가포르의 대북 교역량은 약 1300만 달러로 북한의 일곱 번째 교역국이었다. 북한은 수교 이후 무역·선박회사를 싱가포르에 진출시켜 외화벌이에 나섰다. 또 싱가포르는 북한 주민에게 무비자로 입국을 허용했기 때문에 많은 북한 노동자들이 싱가포르에서 일했다.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로 원유 수입이 중단된 북한이 매달린 곳도 싱가포르였다. 노동당 고위 관리로 일하다 탈북한 리정호 씨는 지난해 미국의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매년 20만∼30만 t의 원유를 수입하고 있고, 싱가포르 회사들이 20년 동안 중개 역할을 해왔다”며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거래 방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싱가포르 기업 2곳이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불법 석유 거래를 중개하다 적발돼 미 재무부의 제재 대상에 올랐다. 다만 싱가포르는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동참했다. 이에 따라 비자 면제가 폐지됐고, 지난해 11월부터 대북 교역을 전면 중단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북한#싱가포르#북미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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