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신세돈]촛불혁명이 비추는 새로운 경제체제

  • 동아일보

“고르게 나누면 가난함 없고 화합하면 부족함 없다”던 孔子, 헌법 119조 경제민주화 닮은꼴
국민행복 내건 박근혜 정부, 통합은커녕 불평등 악화시켜
대통령 물러난다고 위기 끝날까… 공정 통합 혁신의 나라 세워야

신세돈 객원논설위원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
신세돈 객원논설위원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
 공자(孔子) 10대 제자 중 하나인 염유(염有·子有)가 나라가 해야 하는 바에 대해 물었을 때 공자는 “부요하게 하는 일이다(富之)”(子路9)라고 대답했다. 경제가 잘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공자에게는 경제적 풍요로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균형과 안정’이었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 듣기에 국가를 다스리는 지도자는 부족함을 걱정하지 않고 고르지 않음을 걱정하며(不患寡而患不均), 가난함을 걱정하지 않고 불안정함을 걱정한다(不患貧而患不安)고 했다. 모두가 고르게 나누면 가난한 사람이 없는 법이며(蓋均無貧) 서로 화합(和)하면 부족함이 없게 잘살게 되는 법이고(和無寡) 사회가 안정(安)되면 국가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법이다(安無傾).”(季氏1)

 모두가 고르게 나누면 가난함이 없고 서로 화합하면 부족함이 없으며 안정되면 국가가 쓰러지지 않는다는 공자의 생각은 우리 헌법 제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 규정’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즉, 균형 있는 국민 경제의 성장 및 안정, 적정한 소득의 분배, 시장 지배 및 경제력 남용 방지 그리고 경제 주체 간의 조화는 공자의 생각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이미 2500여 년 전 공자는 양극화와 그로 인한 사회 불안의 심각성을 깊게 꿰뚫으며 국민의 기본적 생존권 보장과 균형 성장 및 경제주체 간의 조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행복과 경제민주화라는 두 기둥을 바탕으로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연상시키는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거창하게 내걸고 출범했다. 그러나 요란한 출항 이후 박근혜 정부의 복지정책 항로는 선거 때 약속과는 사뭇 달랐다. 기초연금이나 보육에 관한 공약이 상당 부분 파기, 축소, 혹은 연기되었다.

 보편적 생활복지를 위한 사회적 투자 정책은 일자리 창출 중심의 맞춤형 고용복지로 방향을 돌림으로써 복지 대상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 결과 복지정책을 매개로 한 사회 통합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득 불평등이 확대되고 계층 간 이동이 더 어려워짐으로써 사회 갈등과 불화가 더 악화되었다. 박근혜 정부의 ‘한국형 복지국가론’이 선거용으로 급조됐다는 비판이 나오게 되는 이유다. 돈만 있으면 쉽게 복지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고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는 증거다.

 공자 제자 중에서 이재의 귀재로 불리는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백성들에게 은혜를 널리 베풀고 많은 사람에게 복지 혜택을 준다면 어진 정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찌 어질다고만 하겠느냐. 필히 성군의 정치이리라(何事於仁 必也聖乎).”(雍也28)

 이어서 말했다. “요순과 같은 전설 속의 성군마저도 그런 정치를 못한 것을 괴로워하셨다.” ‘널리 베풀고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博施濟衆)’은 공자뿐만 아니라 전설 속 요순 정치의 궁극 목표였다.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나라가 온통 어지럽다. 아래로 민생은 참담하고 위로 정치권은 뿌리째 흔들린다. 법치의 권위와 민주주의 질서마저 실종되었다고 믿는 사람이 늘고 있다. 몇 날 몇 밤쯤의 배고픔과 추위야 참을 수 있으련만 경제 부흥과 국민행복을 가져다줄 것으로 철석같이 믿었던 대통령과 국가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허무하게 무너졌음을 깨닫는 순간 기댈 곳 없는 서민의 분노와 고통과 실망은 촌각도 견딜 수가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수백만 촛불 민심은 단지 대통령 한 사람이 물러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촛불은 그냥 시작일 뿐 더 큰 국가 과제가 남아있음을 알고 있다. 그것은 모두가 공정하고, 서로 통합 또는 협력하며 끊임없이 스스로 혁신하는 새 나라 새 경제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공자의 말로 번역한다면 ‘모두가 고르게 나누어 가난함이 없으며(蓋均無貧) 서로 화합하여 부족함이 없고(和無寡) 사회가 안정되어 쓰러지지 않는(安無傾) 국가’를 세우는 일이다. 그것이 어찌 대통령 한 사람만 바꾼다고 이루어질 일인가. 촛불 민심은 그 너머로 스스로는 아무런 바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정치권에 그들이 해야 할 거역할 수 없는 국가 과제를 거센 파도처럼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신세돈 객원논설위원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
#공자#경제민주화#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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