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조영민]제1야당 대표의 품격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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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민 채널A 정치부 기자
조영민 채널A 정치부 기자
 “(영수회담 제안에 대해) 일각에선 문재인 전 대표의 뜻이란 이야기도 나오는데 어떻게 받아들이세요?”(기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뜬금없이 단독 영수회담을 제안했다가 14시간 만에 철회한 14일 저녁. 민주당 비상의원총회에서 십자포화를 맞고 나온 추 대표에게 던진 기자들의 마지막 질문이었다.

 “질문의 수준을 높입시다.”

 돌아온 대답은 뜬금없었다. 의미를 짐작하기 어려운 엷은 미소였지만 날이 잔뜩 서 있었다.

 지난 주말 ‘100만 촛불’의 민심을 목격한 청와대와 국회가 어떤 수습카드를 내놓을지는 모든 국민의 관심사였다. 그런 시국에 제1야당 대표의 일성이 “단독 영수회담”이었으니 그 제안의 배경과 의미를 따져 묻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앞서 7일 대통령의 영수회담 제안을 전하러 국회를 찾은 대통령비서실장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추 대표였다. 그랬던 추 대표가 대뜸 대통령에게 대화를 제안했으니…. 정치 5, 6단쯤 된다는 중견 정치인도 추 대표의 ‘한 수’를 섣불리 해석하길 주저했다. 혹자는 ‘깊은 뜻’이 있을 것이라고 했고, 몇 수 앞을 내다본 치밀한 계산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하지만 14시간 만에 없던 일이 됐다. 묻지 않아도 추 대표의 소상한 설명이 있어야 했다. 백번 양보해 공개하기 힘든, 말할 수 없는 정치의 영역을 인정한다 해도 ‘질문 수준’을 운운하며 적당히 뭉개려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순간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째려보는 눈빛이 떠올랐다.

 “가족회사 자금을 유용한 것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우 전 수석은 질문을 던진 기자를 한참 노려봤다.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이렇게 꼬집었다. “국민을 대신해 질문하는 기자에게 저런 ‘눈알 부라림’은 할 수 없을 텐데 말입니다.” 국민적 관심사에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답변해야 할 사회 지도층의 태도라는 면에서 ‘우의 눈빛’과 ‘추의 답변’은 다를 바 없다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대통령이 도대체 누구와 국정 운영을 논의했는지 모르겠다는 의혹에서부터 출발해 엉망진창이 된 시국이다. 그 시국을 정리하겠다고 나선 제1야당 대표가 갑작스러운 회담을 제의했는데, 역시 누구와 논의했는지 도무지 아는 사람이 없다. 당내에서조차 “우리가 최순실 당이냐”라는 성토가 터져 나왔다.

 대통령비서실장이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했다가 자신도 알지 못했던 최순실의 존재가 드러나자 망신을 당했다. 추 대표의 비서실장도 진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당일 아침까지 “청와대의 언론 플레이일 것”이라는 대답을 내놨다고 한다.

 대통령의 90초짜리 녹화 사과가 ‘불통’이란 걸 누구보다 매섭게 지적한 추 대표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끄는 당이 대안세력이 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허물이 되는 이유가 본인에게 적용할 때만 예외가 될 순 없다. 제1야당의 대표가 기자들의 질문에 속이 뒤틀린다고 말을 비틀어 내뱉을 정도로 가벼운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줄여서 ‘내로남불’)이라는 식의 태도는 리더십의 바닥만 드러낼 뿐이다.

조영민 채널A 정치부 기자 ym@donga.com
#영수회담#문재인#추미애#우병우#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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