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군부 생존 위해 충성경쟁… 南 향해 총구 겨눌 가능성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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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김정은 공포통치]커지는 대남 군사도발 우려

“평양에서 만난 북한 관료들의 태도와 분위기가 경직되고 살벌했다. 군사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대북 소식통은 이달 초 평양을 방문한 인사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고 14일 전했다. 북한 군부 2인자인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의 전격 숙청이 북한 권력 엘리트에게 전해진 공포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을 피의 숙청으로 억누르는 공포통치는 북한 핵심 간부들의 경직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는 이런 파장이 남북관계 경색과 북한의 군사적 도발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 “북한 군부의 군사 모험주의 나타날 가능성”

정부 관계자는 “통치 자금이 부족한 김정은은 군부, 대남, 대외 등 각 부문에서 외화를 확보하라고 지시했고 성과가 없거나 이견을 내면 문책하거나 숙청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숙청과 처형에 의한 공포통치가 북한에서 남북관계를 담당하는 이른바 대남 일꾼 간부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남북 접촉을 한 뒤 별다른 결과물 없이 평양으로 돌아갈 때 마주할 수 있는 숙청에 대한 두려움이 소극성으로 이어지고, 군부에서도 생존을 위한 충성 경쟁 차원의 대남 군사 모험주의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2월 말 불거진 뒤 두 달 넘게 출구를 찾지 못하는 남북 간 개성공단 임금 갈등에서 나타난 북측의 경직성의 배경을 김정은의 공포통치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대북 소식통은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의 임금을 올리라는 건 김정은의 지시였다”고 말했다. 임금 인상에 성공해 자금을 확보하라는 지시를 이행하지 못하면 숙청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개성공단의 북한 관리 책임기관인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총국) 간부들에게 작용한다는 얘기다.

한국 군 당국은 김정은이 ‘피의 숙청’에 동요하는 군부를 달래고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한 대남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북한이 13일 서해 백령도에 이어 14일 밤 연평도 인근 북방한계선(NLL) 이북 해상에서 190여 발을 쏜 포 사격훈련도 유력한 징후의 하나다. 북한군의 야간 포사격은 극히 이례적이라는 점에서 군은 주목하고 있다. 대남 기습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모종의 도발을 준비하면서 우리 군의 대응 태세를 떠봤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리 해군 함정에 대한 조준타격 가능성도 거론된다. 군 관계자는 “어뢰로 천안함을 폭침시킨 북한이 이번에는 함포나 해안포로 NLL 인근의 아군 함정을 야간에 공격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 “공포통치 계속되면 권력 엘리트 이탈”

김정은의 공포정치는 사회주의 국가 독재자가 체제를 공고화하는 과정에서 숙청을 통해 지배그룹(이너서클) 규모를 축소해 통치 비용을 줄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체제 불안정성이 높아지는 요인이라기보다는 체제 안정화의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체제 기반이 취약한 김정은이 집권 4년 차에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 ‘영도자’로 홀로 서기 위해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김정은은 권력 엘리트를 상대로 통제를 강화하는 공포정치를, 주민들에게는 자신의 애민 정신을 선전하는 이중적 리더십을 보이고 있다.

이런 리더십이 충동적이고 폭력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우려할 대목이다. 특히 김정일이 핵심 측근들에게 사치품을 선물하는 ‘선물정치’로 지배그룹을 관리한 것과 달리 김정은은 무리한 목표 달성만을 강요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이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김정일 시대에는 핵심 간부들에게 ‘좌천당해도 다시 중용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그것이 충성심의 유지로 이어졌다”며 “김정은의 숙청 처형 반복은 핵심 엘리트들의 충성심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고위 당국자는 “장성택 처형 이후부터 현영철뿐 아니라 숙청과 처형은 계속될 것이다. 이로 인한 권력 엘리트 이탈이 시작되면 제2의 황장엽 사태도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3대 세습에 이른 김정은 시대를 맞은 ‘노년층 핵심 권력’들이 자신도 김정은 체제를 옹립한 지분이 있다는 태도로 접근하자 김정은이 이를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용납하지 못한다(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분석도 있다. 최측근 그룹이라도 영도자 권위에 도전하면 손대야 하는 딜레마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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