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원의 정치해부학]이완구, 그 자리에서 멈춰 뒤돌아보기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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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논설위원
박성원 논설위원
1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이 열리기 직전. 정의화 국회의장은 답변을 위해 출석한 이완구 국무총리와 관례적으로 악수를 나누었다. 일부 인터넷 기사에서는 악수를 나눈 직후 의장석으로 돌아서는 정 의장과 이 총리가 함께 찍힌 사진 설명에 ‘손 내민 이 총리, 외면하는 정 의장’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고(故)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2013년 부여-청양 재선거 때 이 총리에게 3000만 원을 줬다는 육성이 공개된 뒤의 분위기를 묘사한 것. 정 의장 측은 “통상적 인사를 하고 돌아선 것일 뿐 외면한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지만 세상에 비치는 이 총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신중함 절제력의 상실


이 총리는 이날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성완종 리스트’ 수사와 관련해 “대단히 복잡하고 광범위한 측면에서 수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전날엔 “여야 막론하고 (성 회장의) 후원금을 받았다. 이름을 공개할 수도 있다. 저는 받지 않았다”는 말도 했다. 압박하는 야당 의원들에게 “당신들도 조심하라”고 위협하는 듯한 말투였다. 자로 잰 듯한 과거의 신중함과 절제력을 잃어가는 모습이다.

성 회장에 대해서도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고 했다가 이를 반박이라도 하는 듯한 사진, 영상, 비망록이 속속 튀어나오고 있다. 같은 당의, 같은 충남 지역구 의원으로 잘 아는 게 상식적임에도 아예 선을 그으려는 태도가 ‘제발이 저려 그러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사고 있다. 2012년 대선 지원유세에 대해서도 “혈액암으로 입원해서 관여하지 못했다”고 했다가 충남 천안시 아우내장터에서 지지 연설하는 영상이 튀어나왔다.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 데 대해선 “목숨을 담보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협박”으로 비치기까지 한다.

성경도, 논어도, 금강경도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남을 사랑할 수 없다고 가르친다. 국가와 민족이 아니라 개인의 자리보전에 목숨을 건 듯한 모습이 안쓰럽다. 평정심을 잃은 듯한 이 총리의 ‘오럴 해저드(oral hazard·언어적 해이)가 위태위태해 보인다. 위기 돌파에 능하다고 자처하고 혈액암까지 이겨냈다는 이 총리가 ‘허무맹랑한(본인 생각)’ 의혹 제기에 ‘정신이 혼미해지고’ 이렇게 스텝이 꼬인다면 국가비상사태 시 대통령 권한을 대행할 수 있을까 싶다.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둔 올 1월 차남의 병역면제 의혹이 제기됐을 때 이 총리는 누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자식을 공개 검증대에 세웠다. 진료기록 제출로도 충분한 십자인대 파열이었다. 그래 놓고는 “비정한 아빠가 됐다”며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 총리는 청문회의 가혹한 검증을 선제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머리를 썼는지 몰라도 눈치 빠른 사람들 눈에는 권력과 출세를 얻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인간형으로 비쳤다.

총리의 ‘오럴 해저드’

어제 박근혜 대통령은 출국 직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의 긴급회동에서 이 총리 문제 등 현안에 관해 “다녀와서 결정하겠다. 의혹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는 길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자진 사퇴의 길을 열어놓은 셈이다.

이 총리는 자전적 에세이집 ‘약속을 지키는 사람’에서 외롭고 불안하고 마음이 조급할 때 구명줄 역할을 해준 유흥식 라자로 주교의 말을 소개하고 있다.

“한번쯤은 긴 호흡을 하고 여유를 찾게. 한번쯤은 그 자리에서 멈추고 뒤를 돌아보게.”

지금이야말로 이 총리가 스스로 거취를 돌아볼 때가 된 듯하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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