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이슈]올 한해 ‘公安태풍의 눈’ 남재준 국정원장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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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뜻이 곧 그분의 뜻”… 타협을 모르는 안보戰士

박근혜 대통령과 남재준 국가정보원장(가운데)이 3월 22일 청와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뒤로는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지나가고 있다. 올해 정쟁의 한복판에 선 남 원장에 대해 야당은 ‘퇴진 대상 1호’로 지목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임은 매우 두텁다. 동아일보DB
박근혜 대통령과 남재준 국가정보원장(가운데)이 3월 22일 청와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뒤로는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지나가고 있다. 올해 정쟁의 한복판에 선 남 원장에 대해 야당은 ‘퇴진 대상 1호’로 지목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임은 매우 두텁다. 동아일보DB
그에 대한 호불호는 명확히 갈린다. 한쪽에선 ‘보수의 마지막 보루’ ‘애국주의 전사(戰士)’라고 부르며 환호한다. 다른 쪽에선 ‘공안 통치의 상징’ ‘수구 꼴통의 보스(boss)’라고 비난하며 퇴진까지 요구한다. 북한에 그는 ‘제거 대상 1호’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언론의 톱뉴스가 되는 사람. 다사다난했던 2013년 대한민국 뉴스의 중심 인물 중 한 사람. 바로 남재준 국가정보원장(69)이다.
진짜 사나이, 진짜 군인

‘국정원장 남재준’은 분명 논란의 인물이다. 그러나 ‘군인 남재준’은 흠집을 찾기 힘들다. 군 안팎에서 그를 ‘진짜 군인’으로 부르길 주저하는 사람을 만나기 어려웠다.

1965년 육사에 입학해 소위로 임관한 후 2005년 육군 수장인 육군참모총장으로 전역할 때까지 40년의 군 생활에서 얻어진 명성이다. 원리원칙주의자로 살아오면서 ‘공과 사의 확실한 구분’, ‘국가에 대한 무한한 충성’이 ‘멋있는 진짜 사나이, 남재준’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전역 직전까지도 그의 별명은 ‘생도 3학년’. 육사 생도 생활 4년 중 가장 투철한 책임감과 사명감이 필요한 시절이 3학년이기 때문이다. 별(장성)을 단 뒤에도 그는 ‘생도 3학년’처럼 군기 든 모습을 잃지 않았다고 많은 지인이 전한다.

1979년 12·12사태 때 서슬 퍼런 신군부의 군사쿠데타에 맞서 싸우다가 목숨을 잃은 육사 25기 동기생인 김오랑 소령의 묘를 찾아가 통곡한 일도 유명하다. 그는 군 지휘관들 중 골프를 치지 않는 드문 인사에 속한다. 그는 “남들이 골프 치는 시간에 나는 책을 본다”고 말한다. 특히 최세인 전 1군사령관이 쓴 ‘지휘통솔’이라는 군사 책자를 탐독했다고 한다. 국정원의 한 간부는 “남 원장의 어마어마한 독서량에 깜짝 놀랐다. 2만∼3만 권은 읽은 걸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장성용 관용차를 타지 않고 손수 소형 ‘아벨라’ 승용차를 몰고 관사에 나타나기 일쑤였다. 병사들이 몰라보고 제지하는 해프닝도 많았다. 육군참모총장 퇴임식 때는 “국가 예산을 한 푼도 허투루 사용할 수 없다”며 부인이 몰고 온 개인 승용차를 타고 계룡대를 떠났다. 육군 관계자는 “남 원장이 참모총장 퇴임 직전 간부들을 불러 놓고선 ‘나는 비록 떠나지만 항상 여러분의 양심과 같이 있을 것이다. 초심을 잃지 마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비정상적인 관행을 정상화해 놨는데 본인이 떠난 뒤 그런 악습이 되살아날 것을 끝까지 걱정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육군참모총장 재직 시절 남 원장은 예하 부대 간부 등을 대상으로 준비된 원고도 없이 2∼3시간 ‘폭풍 강의’를 하곤 했다. 그 강연을 들었다는 한 인사는 “신념에 가득 찬 목소리로 국가안보에 대해 얘기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꽤 긴 시간이었지만 졸 수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정치적 중립은 있지만 정체성의 중립은 없다”

그의 원칙주의는 권력과의 갈등을 낳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장성 진급 비리 의혹에 휘말리며 고초를 겪었다. 군 인사 문제로 ‘청와대 386’과 틀어진 것이 단초라는 해석이 군 내의 다수설이다. 당시 청와대 386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수차례 특정 인물들에 대한 진급을 요청했다. 남 원장은 “좋다,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 그 대신 이 과정을 모두 육군 홈페이지에 공개하겠다”고 맞섰다. 이 와중에 육본 간부회의에서 “옛날 정중부의 난이 왜 일어났는지 아느냐”며 청와대에 불만을 토로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

그 무렵 남 원장이 자기 인맥 위주로 진급시켰다는 괴문서가 돌았고 당시 군 검찰은 이례적으로 신속히 육본 인사참모부를 압수수색했다. 이에 남 원장은 전역 지원서를 내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군 수사 결과 혐의를 밝혀내지 못하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전역 지원서를 반려하면서 일단락됐다.

남 원장은 육군참모총장 2년 임기는 채웠지만 노무현 정부에서 그 이상의 공직에 오르지 않았다. 당시 국방부 장관직 제의가 있었으나 “군이 정치적 중립은 지켜야 하지만 정체성 중립은 없다”며 거절했다. 군 관계자는 “남 원장은 노무현 정부가 무리하게 병력 및 복무 기간 단축,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추진하는 것을 확고히 반대했다. 특히 주적 개념을 놓고선 당시 노 대통령과 직접 충돌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자신의 소신을 장관직과 맞바꾸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무한 신뢰 받은 무모한 질주?

2005년 4월 육군참모총장에서 퇴임한 이후 정확히 8년 만에 그는 공직에 복귀했다. 박근혜 정부의 첫 국정원장으로 화려하게…. 취임 일성도 그다웠다. “나는 전사가 될 각오가 돼 있다. 여러분도 전사가 될 각오를 다져 달라.”

그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임은 매우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 원장의 대북 또는 대(對)종북세력 강경 드라이브에 대해 일부 참모진은 “박 대통령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속도 조절론을 제기했다. 이에 남 원장은 “그 분의 뜻이 내 뜻이고 내 뜻이 그 분 뜻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부 내부에서도 “두 분의 ‘싱크로율’(‘닮은 비율’이란 뜻)은 100%”란 말이 돈다.

박 대통령과 남 원장의 인연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당내 대선후보 경선 때 그는 국방안보분야 특보로서 정책 조언자 역할을 했다. 박 대통령이 경선에서 고배를 마신 후 다른 후보 측에서 도와 달라는 요청이 왔으나 남 원장은 일절 거절했다. 박 대통령에게 꾸준히 안보 관련 조언을 해 오던 남 원장은 지난해 새누리당 대선캠프의 국방안보분야 특보를 맡으며 실세로 부상했다. 정부 당국자는 “남 원장이 언제까지 국정원장으로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는 박근혜 정부의 시작과 끝을 함께할 순장조(殉葬組)의 핵심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나친 원칙주의가 그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비판과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실제 군이나 정치권에서 그를 접한 사람들 중엔 “남 원장이 ‘군인다운 군인’임은 인정하지만 너무 고지식하고 유연함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이도 꽤 있다. 정무적 감각이 부족한 탓에 그가 원칙과 소신으로 밀어붙인 일련의 행동이 박 대통령과 정권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걱정이다. “2015년 남북통일을 위해 목숨을 바치자”는 그의 국정원 송년회 발언이 대표적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국정원 측으로부터 ‘그런 각오로 나라에 헌신하자’는 취지였다는 해명을 들었지만 북한이나 야권에 불필요한 오해를 줄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은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야권에선 남 원장을 ‘퇴진 대상 1호’로 꼽고 있다.
국정원의 높아진 사기, 진정한 개혁으로 이어질까

“일할 맛이 난다. 우리는 돈이 아니라 사명감으로 살기 때문이다.”

국정원 직원들은 남 원장 취임 이후 달라진 점으로 한결같이 ‘조국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되찾아 준 점을 꼽았다. 국정원 홈페이지에는 국정원의 존립 목적에 대해 ‘국가안보 수호와 국익 증진의 사명을 부여받은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에서 보듯 국가안보는 뒷전인 채 국내 정치 개입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정원 인사는 “남 원장이 소신 있는 리더십으로 국정원을 이끌며 우리의 존재 이유를 되찾아 줬다”고 말했다.

국가안보에 대한 그의 확고한 신념은 일상에도 묻어 있다. 군인 시절 임지를 옮길 때마다 이순신 장군 영정을 반드시 챙겨 새 사무실에 걸었다. 지금도 국정원장 관저에는 그 영정이 걸려 있다. 6·25 국군포로를 국정원에 초청해 “그동안 대한민국이 비겁했습니다”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린 모습은 ‘쇼’가 아니라 그의 진심이라고 주변 인사들은 입을 모은다. 애창곡도 ‘독립군가’다. 국정원 간부들과 회식할 때는 어김없이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아아 이슬같이 기꺼이 죽으리이다”라고 열창한다.

그가 ‘국정원이 국가안보를 지키는 최전선에 있는 만큼 무너지면 안 된다’는 판단을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국정원은 올 한 해 정국을 뒤흔들어 놓았던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RO(혁명조직) 적발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구속 △장성택 숙청 첩보 등을 주도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공개했다. 그 이유에 대해 국정원 인사는 “대한민국의 안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남 원장이 망설임 없이 그런 결정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남 원장이 일흔을 앞두고 다시 공직에 발을 들인 것도 안보 수호에 대한 일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안다”며 “그에게 국가안보는 절대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목숨보다 소중한 가치”라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종북과의 전쟁’을 총지휘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전쟁은 종북 세력과의 국지전이 아니라 야권 전체와의 전면전으로 비화하고 있다. 이 싸움이 언제 끝날지, 그때도 ‘진격의 남재준’은 건재할지…. 이 불안한 승부를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조마조마하다.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남재준#국정원#박근혜#국정원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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