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中마저 등돌리나” 삿대질… 核집착 심해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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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 vs 中… 핵실험 좌충우돌… 韓-美 협박하고 中과도 충돌

“김정은(북한 노동당 제1비서)이 사면초가를 자초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 이후 북한과 중국의 이례적인 갈등 양상을 지켜보는 한국 정부 당국자와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북한이 결의에 찬성한 중국에 서운함을 느끼는 것은 이해되지만 대립 전선을 중국에까지 확대하는 모양새는 전략적인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중국 시진핑(習近平) 체제와의 첫 관계 설정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란 전망이다.

북한은 23일 외무성 성명에서 “잘못됐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는 겁쟁이들의 비열한 처사”라며 제재 결의에 찬성한 중국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다음 날인 24일 국방위원회 성명에서도 “(이번 결의는) 미국이 주동이 돼 막후교섭으로 골격을 만들고 맹종으로 체질화된 성원국들이 허재비(허수아비)처럼 손을 들어 채택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중국은 당초 ‘장거리 로켓 발사는 우주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북한의 주장을 두둔하며 제재 결의에 반대했으나 미국 등의 집요한 설득에 태도를 바꿨다. 그 배경에는 갓 출범한 시진핑 체제가 미중, 한중 관계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에서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고 정부 당국자들은 설명했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최근 방중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특사단에 “북핵에 반대한다”는 강한 의지를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외교통상부의 한 당국자는 “시진핑 지도부는 북한의 도발이 중국의 동북아지역 내 전략적 이익에 크게 반한다는 인식이 매우 강하다. 어느 때보다 안정적인 주변국 정세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시진핑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내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온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의 자매지인 환추(環球)시보의 후시진(胡錫進) 총편(편집국장)은 24일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 “북한의 불안감을 이해한다. 하지만 이번 건(3차 핵실험)은 매우 우둔한 결정”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는 “김정은은 아버지(김정일)의 사고 틀에서 뛰쳐나와야 한다. 핵실험은 북한 정권의 장기적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은 핵 개발을 김정은 지도부의 체제 안정을 뒷받침할 중대한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핵실험 도박’을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다. 안보부처의 한 당국자는 “북한이 자신들의 전략적 가치만 믿고 자꾸 저런 식으로 엇나가면 중국으로서는 선택지가 좁아진다”고 말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 10년간 후진타오(胡錦濤) 지도부의 대북 인식 변화는 기술적이고 수사적인 변화에서만 찾아볼 수 있었지만 시진핑 지도부는 실제적인 대북 정책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은 “북한이 노골적인 대중 비판과 핵실험 위협 등 각종 도발을 계속한다면 중국은 경제 원조를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군사교류 중단이나 중-북 동맹 재검토 같은 강수를 둘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중국이 순망치한(脣亡齒寒)의 혈맹관계인 북한을 결정적인 순간에는 편들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박준우 연세대 객원교수는 “중국이 북한에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이것은 결국 쓸 수 없는 영향력”이라며 “북한이 핵실험을 하겠다고 해도 중국이 이를 막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정은 기자·베이징=고기정 특파원 lightee@donga.com
▼ 北 vs 美… 美 백악관-국무부-국방부 北에 경고 안보리 결의이후 첫 제재조치 발표 ▼

미국 재무부와 국무부는 24일(현지 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안 2087호를 발표하면서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혐의로 제재 리스트에 올린 대상 가운데 개인 4명과 기관 2곳에 대한 자체 제재를 단행한다고 밝혔다.

이는 백악관과 국방부가 북한 국방위원회의 핵실험 예고를 강력하게 비난한 가운데 나온 것이다. 북한이 ‘미국 핵 겨냥’ 발언을 내놓는 등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데 따른 미국의 전방위 보복으로 풀이된다.

미국 재무부가 지정한 추가 제재 대상은 북한 단천상업은행 중국 베이징 지사의 나경수 대표와 김광일 부대표 등 개인 2명, 홍콩 주재 무역회사인 ‘리더 인터내셔널’ 등 기업 1곳이다. 미국 국무부도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와 백창호 위성통제센터 소장, 장명진 서해위성발사장 총책임자 등 기관 1곳과 개인 2명을 추가로 등록했다.

재무부는 성명에서 “이번 제재는 유엔 안보리 결의 2087호를 이행하기 위한 것이며 아울러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개발에 쓰일 자금 조달 능력을 차단하려는 미국 정부의 오랜 정책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단천상업은행은 이란 등과 탄도미사일 거래 활동을 하고 있는 조선광업개발주식회사(KOMID)와 깊이 연계돼 있고 리더 인터내셔널은 KOMID를 대신해 기계와 장비 등을 운송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재무부는 설명했다.

이날 조치에 따라 미국 국민은 이들 개인 및 기관과의 거래가 원천적으로 금지되며 미국 관할권 내에 있는 이들의 자산은 즉각 동결된다.

이에 앞서 리언 패네타 미국 국방장관은 이날 워싱턴 국방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는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행위를 매우 우려하고 있다”며 “특히 최근 며칠간 그들이 내놓은 발언은 ‘불필요하게 도발적(needlessly provocative)’”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또 “미국은 북한의 어떤 도발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며 “완벽하게 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도 “핵실험은 유엔 제재 규정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 될 것이며, 북한의 고립을 심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 南 vs 北… 北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무효” ▼

북한이 25일 “1992년 채택된 ‘조선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의 완전 백지화, 전면 무효화를 선포한다”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백지화를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북한은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전까지는 “한반도비핵화선언은 유효하며, 이는 김일성의 유훈”이란 방침을 표명해왔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이날 성명에서 “조선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은 미국과 괴뢰패당의 북침 핵전쟁 책동과 반공화국 핵 소동에 의해 이미 사문화된 지 오래”라며 이렇게 밝혔다. “북남 사이에 더 이상 비핵화 논의는 없을 것”이라는 기본 주장도 되풀이했다.

조평통 성명은 또 “제재는 곧 전쟁이며 우리에 대한 선전포고”라며 “남조선괴뢰역적패당이 유엔 제재에 직접적으로 가담할 경우 강력한 물리적 대응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앞서 외무성 성명(23일)이나 국방위원회 성명(24일)에서는 미국만 비난했지만 이날은 남한을 직접 겨냥했다.

정부는 북한의 이런 위협에 대해 “유엔 안보리 결의 이후 본격화한 적대적 메시지의 연장선상에 있다. 예상했던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이 언급한 ‘남한에 대한 강력한 물리적 대응’은 결의 2087호를 근거로 선박 검색 같은 대북 제재를 할 경우 군사적으로 대응하거나 연평도 포격 같은 국지적인 무력 도발을 시도할 소지까지 포함될 수 있다고 이 당국자는 덧붙였다.

정부는 북한이 공언한 3차 핵실험을 실제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대응책을 마련 중이다. 안보 부처의 한 당국자는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의 성능을 시험해 보려는 기술적 필요성이 있을 것”이라며 “북한이 정권 교체기인 지금 핵실험 도박을 한 뒤 새 정부 출범 뒤에는 대화 분위기를 만들어 가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3차 핵실험 시기는 박근혜 당선인의 취임식(2월 25일) 이전이면서도 북한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2월 16일)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

남북이 1991년 12월 31일 합의해 1992년 2월 19일 발효시킨 비핵화 선언. 남북은 핵무기의 시험과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않으며 핵재처리시설과 우라늄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고 핵에너지는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사용한다는 내용을 5개 항에 담고 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핵실험#중국#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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